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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tching' Ghibli-너구리 대합전 폼포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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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나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해 매우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지금도, 지극히 건전할 뿐만 아니라 청소년 취향이라고는 절대 할 수 없는 몇몇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보지 않는다. 민족 감정 같은 것이 있었다기보다는, 12프레임의 압박에 아울러 아직도 심히 건전한 내가 보기에는 사뭇 소름끼치는 장면들이 섞여 있다는 점이 준 충격이 가장 컸다. 뿔이 지나치게 큰 민달팽이라던가, 감전되어서 털이 곤두선 노르스름한 실험쥐가 나오지 않으면 지름이 3cm를 넘어가는 눈동자에 도대체 사람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의문일 정도로 인형을 닮은 체구, 내가 알고 있는 모든 해부학 지식을 다 동원해도 '다리가 부러진다'라는 결론밖에 나지 않았던 가냘픈 팔다리가 나왔다. 정말이지, 모든 공포 영화를 압도했다. 언제나 교복을 개조한 엽기적인 의상을 걸치고 온갖 무용과 체조의 중간 정도 되는 행동을 선보이면서 난감한 구호를 외쳐 대는, 마치 학교 응원 연습 중에 갑자기 끌어낸 듯한 여학생들이 나오는 온갖 만화는 중학교나 고등학교라는 곳이 얼마나 골치아픈 곳일 터인지 심각하게 고민하도록 만들고 말았다. 그래서, 최소한 1999년까지 내가 본 일본 애니메이션은 단 한 편뿐이었다.(그렇다, '빨강머리 앤'이다)
내가 '너구리 대합전 폼포코'를 처음 접한 시기는 1999년이었다. 학교에서 방과 후 미술 수업을 받고 있던 나는, 정신없이 계속되는 수업을 매우 괴로워했다. 도저히 초등학교 2학년생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솔직히 그 수업은 정말 길었다. 정말 끔찍하게 길었다. 몇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래서, 나는 수업 대신 영화 감상을 한다는 소식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항상 뒤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던 탓인지, 분명히 그 애니메이션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있었을 터인데도 전혀 듣지도 못했고, 설명이 있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도 못한다. 내 귀가 반쯤이라도 열려 있었다면 제작사나 감독 이름은 들렸을 텐데. 아, 그러고 보니 잠결에 감독이 타카하타 이사오라는 것은 들은 것 같다.
연호 자르느라 그런지는 모르겠으나(원제는 '평성 너구리 대합전 폼포코'이다), 이 애니메이션이 정식으로 한국에 출시된 것은 바로 올해이다. 이 애니메이션이 1994년작이라는 것을 고려해 볼 때, 1999년에 비디오로 한국에서 시판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매우 낮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암흑의 경로를 통해서 구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영화가 시작된 후에도 제목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그 때 내가 한자를 몰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곤란하다. 최소한, '합전' 정도는 알아봤을 것이다. 나는 그 때 5급 정도의 한자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안 믿겠다면 마음대로 하라. 상관없다.)
덕분에 영화 제목도 못 보고, 배경도 전혀 모르겠고, 매우 심각한 상황에서 영화가 시작되었다. 지금 대본을 안 보고 기억할 수 있는 내용은 도시가 개발되면서 산의 나무를 베고 산을 깎아내어서 너구리들이 살 만 한 터전이 없어졌다는 것뿐이다. 귀여운 너구리들이 등장해서 공놀이를 하는 장면과 너구리들이 대행진을 하는데 놀이 공원에서는 공원 행사라고 우기는 장면은 워낙 인상깊었기에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대사는 한 마디도 기억 안 난다. 너구리들 이름도 모르겠다.(솔직히, 사람 이름도 기억하기 힘들다. 너구리 이름까지 기억하길 바라는 건 무리다.)
하지만, 그 영화가 준 감정은 너무나도 신선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하면 교복을 개조한 알록달록 유치찬란한 의상을 걸치고 화려하다 못해 야하기까지 한 체조를 하면서 난감한 변신 구호를 외쳐 대는, 결코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는 왠지 자아도취증 환자 같은 청소년들을 떠올렸던 내게는, 그런 아이들이 아닌 너구리가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구원이었다. 감전된 실험쥐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최소한 타카하타는 이름 잘 짓는 법은 알고 있었다. 정말 이상한 이름은 없었으니-('모노노케 히메'의 주인공 산의 이름이 한자로 무슨 글자인가 검색해 보았다. 석 삼(三)자이다. 충격받았다면 미안하다. 사실 미야자키는 본인의 이름부터 난감하다. 그런 이름을 지어 주고서 무슨 작명 감각을 바라는가-)
고맙게도, 집에서 몇 명이 나를 데리러 온 건 영화가 거의 다 끝날 때였다. '끝날 때까지 보겠다'고 내가 우긴 덕택에, 모두들 앉아서 그 유쾌한 애니메이션을 감상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안 본 웬만한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지만, 덕분에 그 날 밤에는 너구리 꿈을 실컷 꿀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하긴 했지만, 더 알아보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때까지만 해도 내가 스튜디오 지브리의 광적인 팬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더 알아보려고 한 건 올 겨울이었다-
-'Reading' Ghibli-너구리 대합전 폼포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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