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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의 넋이 본 씨앗판 반지군주 및 실마릴리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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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밝힌 바가 있지만, 나는 씨앗을 뿌리는 사람측과 평소에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기에 선입관을 가지고 보던 편이었다. 그러나 선입관을 가진 비판은 결코 논리적일 수 없음을 알기에, 씨앗측에 대한 악감정 없이 객관적인 시선으로 씨앗판을 바라보기로 하였다. PT 시험 중을 이용해 각각의 번역판을 다시 읽어 본 결과, 의견을 다시 정리할 수 있었다.
1. 문체 면에 있어서.
문체 면에서는, 적어도 반지군주 '만'은 매우 매끄러운 의역체를 자랑한다. 예문판보다 실수가 '비교적'(강조한다) 적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 번역에 있어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싶은 운율 중시로 인해 의미가 종종 손실되었다. 정형시라고 해도 가끔씩 운율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점을 고려하지 못해 오히려 더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게 된 면이 약간 있다. 물론 적어도 시 번역에서는 두 줄 건너 한 번씩 틀리는 게 일인 황금가지판보다는 낫지만, 지나치게 정확하게 맞춘 운율은 분명히 어색하다. 실마릴리온은 원문이 그리 딱딱하지 않은데도(물론 호빗보다는 딱딱하지만, 반지군주와 대동소이하다) 지나친 직역체가 눈에 거슬린다. 여러 가지 자잘한 실수가 눈에 계속 걸려서 괴롭긴 하지만 탈자 등이 그리 많지는 않아 가독성에는 큰 지장이 없다. 탈자가 있다거나 한 문단이 통째로 증발되는 경우가 없다는 건 차라리 다행일까. 물론 실마릴리온은 반지군주와 다른 문제다(실수 세다가 한 챕터에서 20개 이상 찾고 포기했다).
2. Elvish 표기 면에 있어서
이 문제는 몇몇 자음들을 나타내는 문자가 한글에 새로 만들어지지 않는 한 절대 결론내릴 수 없다. 기본적으로, 원래의 훈민정음과 달리 현재의 한글은 많은 외국어 표기용 자음들이 폐지된 상태이기에 한국어에 없는 발음은 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비슷한 음을 내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단독 자음으로 존재하는 r과 두 음절이라 할 수 있는 ae, oe가 가장 쟁점이 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단독 자음은 일단 종성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자음을 내는 듯한 입 모양을 하고 소리내면 종성으로 나온다. 지금 당장 해 봐도 좋다). 단, 한글 ㅅ이나 알파벳 s의 경우에는 음 자체의 특성상 혀 사이로 새어나오는 소리가 있기에 초성에 더 가까운데, 다른 자음들은 혀 사이로 새는 소리가 거의 없으므로 무시해도 좋다. 따라서 r은 가장 가까운 발음인 종성 ㄹ로 표기하는 것이 가장 비슷한 발음이 되겟지만, l과 혼동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초성으로 두자니 혀 사이로 새어나오는 소리의 강도가 그리 높지 않으며, 신다린에 매우 많아서 난감한 발음인 -rn 같은 경우에는 없는 모음을 만들어 넣어야 해서 정말 말도 안 되고 중역스런 표기가 된다. 이 경우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 하는 문제이긴 하나, 가능하면 비슷한 발음을 낼 수 있도록 전사법을 채택하는 게 좋지 않은가 싶으며, 한글의 알파벳 표기에서는 전사법을 채택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이 외래어 표기의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믿는다. -ae. -oe의 경우에는 a-e, o-e로 발음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톨킨이 부록에서 밝힌 바에 따라 아에, 오에로 표기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영어에서만은' 아에, 오에 발음이 없으며, 따라서 영어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아이, 오이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Elvish, 특히 Quenya에는 -ai, -oi 표기가 매우 흔히 존재한다. -i를 표기하는 문자가 Tengwar에 따로 있을 정도이기에, 아이, 오이로 표기하는 것은 정확한 발음이 아닐 뿐만 아니라 혼동을 낳을 수 있다. 또한, 뒤의 -e 발음이 약해진다는 말에 대한 근거를 찾기 위해 LotR과 실마릴리온 부록을 뒤져 보았으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HoME나 Letters of JRRT에 그런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톨킨은 말년까지 계속 세계관을 바꾸었으며, 갑자기 호빗이 인간이 될 정도로 HoME는 일관성없는 저술들을 모아 놓은 말 그대로 유고집이기 때문에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 단지 영어권 사람들이 아이, 오이에 가깝게 발음한다고 해서 ae, oe를 아이, 오이로 표기하는 것은 케이트 블란쳇이 에아렌딜을 에렌딜로 발음했다고 해서(이런 실수는 LotR 영화에서 종종 발견된다) 에아렌딜을 에렌딜로 표기하는 것과 같은 실수이다.
3. 인명/지명 번역 문제에 있어서.
대부분의 소설에서 인명이나 지명은 매우 신중하게 지어지며 그만큼 많은 뜻을 담고 있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독자들이 인명이나 지명 등 고유 명사의 뜻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할 방법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고유명사를 한국어로 번역한 취지에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고유 명사의 뜻, 특히 인명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은 취지와 상관없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1) 호빗들의 성을 번역한다는 점에 있어서, 특정한 인물의 성격이나 주거지 등을 나타내는 성에 익숙한 유럽이나 일본과는 달리 한국이나 중국의 성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에 번역한 성을 아시아식으로 '이름 앞에 붙여서' 쓰는 것은 심한 이질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2) 번역할 수 있는 성(Baggins, Proudfoot 등)이 있는 반면 번역할 수 없는성(Took, Gamgee)도 있다. 주인의 이름은 '골목에 처박힌 프로도'인데 하인의 이름은 '갬지네 집 멍청이'라면, 역시 뜻을 가진 성과 뜻이 없는 성이 공존하는 유럽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매우 어색하다.
(3) 말 뜻으로 주는 어감도 있지만, 번역으로는 잡아내기 힘든 단어 자체나 음운에서 주는 어감도 있다. 인도유럽어권 언어인 프랑스어, 독일어 등은 영어와 이런 종류의 어감을 상당 부분 공유하는 데 비해 어휘 자체에 매우 큰 차이가 있는 한국어에서는 이런 어감을 살려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번역한 말만 남겨 두어 원래의 인명을 확인할 수 없는 현재의 씨앗판에서는 독자가 이런 어감을 전혀 파악할 수 없게 해 놓았다. '억울하면 원서 봐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번역은 번역가의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가능하면 독자가 원작의 어감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Brandywine 같은 이름을 번역하면 Baranduin과 비슷한 발음을 가졌다는 점을 인식하기 힘들다는 점도 하나의 예가 된다. 굳이 이름을 번역해야 한다면, 번역하기 전의 원문을 각주 등으로 실어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4) Elvish 지명이나 인명에 담긴 뜻도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괄호나 각주, 색인 등으로 해석을 다는 것이 글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
톨킨은 자신의 작품이 한국어로 번역될 것이라고 생각한 일이 없었을 것이다. 당시에 한국은 '한국 전쟁'의 주인공 국가나 '베트남 전쟁의 용병국'으로 알려진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주목받지 못하는 국가였다. 톨킨의 번역 지침은 어디까지나 유럽어나 기껏해야 일본어 정도까지만 겨냥한 지침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그런 지침을 따를 수 있다면 한국어로도 따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특히 인명 번역에 대해서는 한국과 일본의 성이 생긴 배경에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 가능했던 번역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일본 같은 경우에는 호적을 개정하면서 평민/천민들이 성을 등록할 때 주거 환경이나 직업 등을 채택한 반면, 한국에서는 주로 주인 집안의 성 등 이미 존재하는 성을 많이 채택했다) 톨킨의 말은 성전이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4. 어휘 선택에 관하여
톨킨의 원래 문체를 살리려는 의도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씨앗판을 보면 사어(死語)가 많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어는 고전적이고 신화적인 분위기를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독자가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독자는 편집자들과 달리 국어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며, 평소에 거의 쓰이지 않는 단어들이 튀어나올 경우 탁월한 어휘 선택을 칭찬하기보다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국어 사전을 꺼내 들 것이다. 사어는 실질적으로 방언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서울말'이 아니므로 표준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비표준적인 사어를 번역에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는 것은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톨킨은 비록 사어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Unfinished Tales나 History of Middle-Earth를 끝까지 읽어 본 사람은 크리스토퍼 톨킨이 책 뒤에 색인으로 사어나 고어에 대한 뜻풀이를 해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간단한 방법으로도 독자가 작품을 이해하도록 크게 도울 수 있다.
번역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지, 한국어로 작품을 다시 쓰자는 것이 아니다. 문체를 살리기 위해서 가능하면 어렵고 난해한 단어들로 독자의 주의를 끌기보다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고풍스러운 문체를 사용하는 것이 독자의 이해와 원문과 유사한 문체를 모두 살릴 수 있는 방법이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잘 쓰이지 않는 단어를 사용하되 색인으로 뜻풀이를 덧붙여 놓아야 할 것이다.
5. 총론
기본적으로, 최소한 반지군주의 경우에는 황금가지판에 비해서 문체나 유창성 면이 더 뛰어나다. 그러나 매끄러운 번역이나 톨킨의 문체를 한국어로 옮기려는 시도 등이 오히려 가독성을 떨어뜨리고 혼돈을 낳는데, 특히 고유 명사 번역이나 옛말 사용 등에 있어서는 주석과 색인을 충분히 활용하는 방식을 취해서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번역은 번역자의 자기 만족을 위한 것도 아니요, 한국어로 작품을 다시 쓰는 번안과도 구별되어야 한다. 번역에 있어서는, 그리고 더 나아가서 출판이라는 '사업'에 있어서는 구매자, 즉 독자가 최우선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Feanaro Helcahisie Huineambar Airetier Serkelinde Fanyalosse Laurelome-ninquemirie, Romenn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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