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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의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문학 창작 관련 영재 교육 프로그램을 수료한 경험이 있다. 환상 문학가를 꿈꾸는 나로서는 한국 대학 문학 창작과의 고루한 분위기나 포스트모더니즘 및 실존주의 등의 사상적 배경을 문학적 가치보다 더 중요시하는 듯한 태도가 상당히 불편했기에, 이 프로그램도 그런 양상을 띠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를 문학 창작 프로그램에 지원하면서도 해야만 했다. 그러나 내가 환상 문학을 주로 쓴다는 사실을 강사에게 밝혔을 때, 눈대중으로만도 60세가 넘어 보이는 늙은 강사는 한국의 문학 창작과 교수들처럼 싫은 기색을 하기는커녕, 스스로도 톨킨의 열렬한 팬이라면서 환영하는 빛을 띠었고, FInal Project를 환상 문학 위주로 제출했는데도 성적이나 평가에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 이런 미국의 개방적인 태도는 환상 문학가를 꿈꾸지만 기본적인 플롯 구성 등을 체계적으로 배우려 했던 내게는 매우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환상 문학을 쓰는 인물은 그 학급에 나 외에도 두셋이 더 있었기에, 나는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동료를 먼 이국 땅에서 처음 만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야 헸다.
이미 유수한 과학 소설 관련 문학상인 휴고상이나 판타지를 넓게 포함하는 아동 문학상인 뉴베리상이 존재하고, 물론 주관적인 기준이지만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어슐러 K. 르 귄이라는 대작가가 있는 미국이나 톨킨 및 루이스라는 영향력 있는 작가들을 낳았고, 현재에도 필립 풀먼이나 조앤 K. 롤링과 같은 유명 작가들을 배출한 영국과 달리, 한국에서 환상 문학은 구전 문학 위주라는 특성상 상당히 오랫동안 문학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었는데도 너무나 좁은 위치만을 점유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경우 구전 문학적 전통 하에서 독자적인 문학이 발달하지 못한 채 일본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급히 [선진적인] 유럽 문학 사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탓이다. 물론 나는 전통이 서구 문화에 비해 무조건 우수한 것도 아니요, 전통을 살리자는 아우성이 가끔은 너무나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서구 문화의 무비판적인 수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서구 문화의 선택적인 수용이다. [근대화]와 [선진화]를 꿈꾸던 당시의 한국 지식인들은 실용주의적인 목적에서 그들에게 당장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거나 또는 식민지 시대라는 어두운 분위기에 걸맞도록 허무주의적인 문화만을 받아들여, 결국 사상이나 문예 사조의 스펙트럼을 이전보다도 더 좁혔을 뿐이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한국 문학은 사실주의, 허무주의 및 실존주의 등의 이미 유럽에서는 그다지 각광받지 못하는 사조에 얽매여 그와 다른 경향을 지닌 문학 작품을 인정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에 따라 그 사조에 어긋나는 과학 소설이나 환상 소설 등은 동화라는 이름을 빌리지 않고서는 문단에 설 수 없게 되었으며, 결국 만화책과 미성년자 관람 불가 잡지만이 범람하는 대여점에서 그 자리를 찾게 되었다. 한국의 환상 문학 애호가들은 이러한 종류의 한국 환상 소설을 [대여점 판타지]라 부르며 그들이 옹호하는 작가(이영도, 전민희 등)와 애써 구분짓지만, 어슐러 르 귄이나 존 톨킨, 클리브 루이스, 아이작 아시모프, 미카엘 엔데와 같은 작가들에 익숙해진 내게는 사실 이영도 씨나 전민희 씨의 글도 흔히 일컬어지는 [양산형 대여점 판타지]와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한국 전설을 이용해 글을 쓰겠다는 이우혁 씨의 글 역시, 자신의 지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을 통해 The Dark Is Rising이라는 동화를 창출해 낸 수잔 쿠퍼의 글에 비해서는 빈약하기 그지없을 따름이다.
즉, 한국에서 판타지가 현실 도피 및 대리 만족 수단으로만 쓰이고, 읽히는 것은 내게 있어서 일종의 악순환으로 다가온다. 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편협한 외래 문화 수용으로 인해 몇 가지 오래 된 사조에 얽매인 한국 소설에 환상 문학이 끼어들 여지가 없게 되자 환상 문학은 지극히 저질적이고 흔한 소재로 전락하게 되고, 이에 따라 한국의 환상 문학은 현실 도피와 대리 만족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결국, 환경만큼이나 추락해 버린 환상 문학은 환상 문학을 그 이상의 무언가로 보려는 독자들에게 있어 아무런 가치도 가질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진부한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지만, 그리고 내가 다른 무엇보다 증오하는 것이 바로 진부한 은유이지만, 진흙에서 피어나는 꽃이라고 해서 모두 진흙과 같은 빛깔을 띨 필요는 없고, 하늘을 바라보고 피는 곷이라 해서 모두 하늘과 같이 청명한 빛깔을 띨 필요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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