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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 대중 문화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나 역시 자살 행위를 원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다지 내색을 하고 다니는 편은 아니지만, 나는 그것이 비교적 덜 알려진 것들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되는 대로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양산형 판타지 소설을 붙들고 있고, 음악을 분류하는 범주는 '오프닝'과 '엔딩'과 '삽입곡'과 '이미지 앨범' 뿐이다.(이건 약간 과장이라 하지만, 내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은 이 블로그를 오래 보신 분이면 모두 알리라 믿는다) 종종 미성년자에게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는 선정적 매체에 대해서 듣는 바도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매체의 내용에 대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파악하고 있게 될 경우도 있다. 물론 대중 음악이나 영화에 대해서는 거의 전혀 무지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 문화 생활에 있어서 일본 문화는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 사실이 한국 사회에서 내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매우 불편하다는 점은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같은 외국 곡을 듣고 있다 하더라도,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가사가 영어이냐 일본어이냐에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갖는 위상은 너무나 달라진다. 모노노케 히메나 언제라도 몇번이라도 같은 비교적 잘 알려진 노래를 듣고 있다면 약간 낫지만, 나와 같이 행복은 죄의 향기 같은 곡을 듣고 있을 경우에는 한국인들의 다양한 음악 취향과도 맞물려 상당히 골치아파진다. 최근 나는 '정말로 한국 노래는 듣지 않느냐'는 동료의 질문을 받고 곤혹스러워하다가 '어느 나라 노래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좋아하는 노래인지의 문제일 뿐이다'라고 답한 경험이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외국 문화의 침투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주류 문화에 있어서는 상당히 보수적이고 전통주의적이다.
culture라는 말의 어원이 농경을 시작하면서 문화가 발생했다는 데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문화(culture)는 한 사람이 어떻게 양육되었는지(cultured) 나타내어 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상당히 파시즘적인 문화는 한국인들이 전통적으로 길들여져 온 방식에 충실한 것이며, 이것은 그 어느 사회 집단의 문화에도 적용할 수 있는 명제이다. 이 때문에,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인으로 길들여진 어떤 사람이든 그 인물의 기억과 성격이 형성되는 과정(정확히 말해서, 정신적 성숙이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는 만 20세경까지의 과정)에서 한국의 환경에 처했다고 할 때 결코 정신적으로 한국이 아닌 어느 나라의 문화적 국민이 될 수 없다. 한국 학생들이 아무리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 고전 문학을 많이 접한다 해도 그 사람들은 이후 현대인의 사고 방식을 갖게 되는 것도 일상 생활에서 그들이 처한 환경이 지극히 '한국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는 나와 같이 외국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혹평하는 이들 중 비교적 온건한 사람들이 말하는 '한국의 외국화'가 억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어떤 사람이 외국 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 해도, 그 사람의 성장 배경이 한국인 이상 그 사람의 의식 구조는 한국인을 벗어나기 어렵다. 문화의 주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행동 방식 및 사고 방식은 거의 조건 반사적인 과정을 통해서 한 사람의 의식에 새겨지기 때문에, 한 번 각인된 이후에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실험을 위해 새끼거위들이 자신을 어머니로 인식하게 한 몇몇 동물 행동학자 및 호기심 많은 실험자들이 실험이 끝난 이후에도 새끼거위들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은, 조건 반사를 통해 얻어진 경험은 다른 기억에 비해 잊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무리 외국 문화를 많이 접한다 해도 어떤 사람의 의식 구조가 변하는 것은 그 사람이 한국을 매우 오랜 기간 동안 떠나 있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무언가가 '안전하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을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민족의 개념을 부인하는 나로서는 민족적 정체성과 같은 것에는 전혀 무관심하다고 할 수 있고, 외국 문화에 지나치게 익숙해지면 한국 사회에서 생활하기 어렵다는 말에 대해서도 생활 환경이 한국인 이상 의식 구조가 외국 문화적으로 변하기는 지극히 어렵다고 생각하기에 외국 문화를 즐기는 것이 위험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일본 문화를 즐기는 이유는 그것이 안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일본 문화에는 내가 즐길 만한 요소가 여럿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즐기는 일본 대중 문화는 지극히 한정적인 부류에 속한다. 애니메이션 업계를 중심으로 해 종종 애니메이션화를 염두에 두고 쓰이는 양산형 대중 소설로부터, 애니메이션의 주제곡과 사운드트랙까지, 행동 양식으로든 전문 지식으로든 오타쿠와는 거리가 먼 나는 오타쿠로 불릴 정도로 애니메이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 외의 분야에 대해서 나는 아는 것이 거의 없는데, 몇 가지 예를 들면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으며, 이름난 일본 영화 감독이 누구인지도 말할 수 없고, 하마사키 아유미의 최신 앨범이 언제 출시되었는지도 대답해 줄 수 없고, 일본 드라마가 평균 몇 편 정도 되는지도 이야기할 수 없다. 즉, 애니메이션을 제외한 일본 문화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두세 번의 걸친 관광을 통해 일본의 유적지를 둘러보아 얻은 지식과 역사서 몇 권에서 얻은 지식뿐이다.
내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지만 의외로 간단하다. 애니메이션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 간단하게 공상을 '구현'할 수 있는 매체에 속하기 때문이다. 게임처럼 귀찮은 프로그래밍을 하지 않아도, 영화처럼 촬영 가능한 장면에 집착하지 않아도, 애니메이션에서는 얼마든지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다. 환상 문학을 모든 문학 중 가장 즐기는 내게 있어서, 이것만으로도 한 장르에 대한 호감을 갖기로는 충분하다. 내가 가장 처음 접한 일본 애니메이션인 '평성 너구리합전 폼포코'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다른 어느 것도 아닌 마치 숲 속에 도깨비나 인간으로 둔갑하는 여우가 살아 있을 것만 같다는 생동감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현재까지도 가장 높이 평가하는 애니메이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은 이들은 그러한 자유로운 표현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이 아니었다면 라퓨타의 붕괴와 같은 장면은 몇십 년 후까지 절대 스크린에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단 더 섬세한 셀 기법을 자랑하는 미국 애니메이션이 아닌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까닭은, 거친 기법을 보면서 가끔씩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려는 목적도 있지만 셀 개수가 심각하게 부족하고 마감의 압박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연출력으로 '때우는' 모습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끔씩은 섬세함이 영상 매체의 특징인 과장된 표현을 약화시키는 모습도 보이기 때문이다.
일본 대중 문화를 즐기는 것과 역사적 괴수(leviathan)였던 과거 일본 제국의 실체를 부인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나는 역사적으로 20세기 전반부에 신생 제국주의 국가로서 일본이 세계 사회에 끼친 피해에 대해 한국의 다른 어느 누구만큼, 혹은 그들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과 일본 대중 문화는 거의 무관하다. 가끔씩 제국주의 코드라며 등장하는 것들도 종종 어이없는 과민 반응이고, 자주 터져나오는 '일빠'와 '오타쿠'에 대한 이야기도 나로서는 가소로울 뿐이다. 문화적 국수주의는 (실제로 오히려 더 영향력이 약한) 문화적 사대주의보다 더욱 위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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