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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도 모르고 쓰는 NGE 리뷰 - 서론 [잔혹한 유희의 명제]

 어떤 종류의 텍스트이건 간에, 재미와 인기가 항상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기준 자체가 주관적이라는 점은 제쳐 두고라도, 텍스트로서의 가치 이전에 문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갖는 현대의 매체에 있어서 그 매체의 재미를 따지기 전에 거론되는 것은 상품으로서 그 매체가 대중에게 알려진 방식이다. 때로는 그 방식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때로는 그 방식이 지나치게 효율적이기 때문에, 텍스트의 질과 무관하게 그러한 매체는 사람들에게 편견으로 전달된다. 여론을 좌우하는 도구로써 흔히 쓰이는 요즈음의 신문과 같은 매체들이 갖는 지극히 공격적이고 노골적인 선전 방식에 비하지는 못하겠지만, 소설, 연극,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대본 등과 같이 비록 상업적이라 해도 일단은 예술로 치부되는 준야에서도 이런 현상은 자주 나타난다. 반지의 군주나 해리 포터와 같은 소설을 영화화해 상업적으로 이용하거나 다양한 경로를 통해 관련 상품을 개발해 판매하는 현상(흔히 one source multi use라고 불리우는)에서도, 교정이나 번역, 혹은 편집에 소모되는 비용보다 오히려 서적에 대한 광고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사실에서도 이런 현상을 찾을 수 있다.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가장 흔한 예로는 Sunrise 사에서 감독마저 계속 교체해 가며 건담 시리즈를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계속 제작해 온 것을 들 수 있다. 이런 문제로 인해, 아무리 그 자체로는 완성도가 평균 이상인 작품이라고 하여도 작품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주로 작품을 선전하는 방식이다. 특히 요즈음의 작품들은 대부분 어떤 의미로든 평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국내에서는 GAINAX의 작품 [신세기 에반겔리온]이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소수의 팬층을 확보하기는 했지만, 일부러 꼬아 둔 듯한(하지만 그런데도 너무나 분명한) 주제 의식과 감독의 sensational한 발언, 15세 이상 관람가라는 등급에 비해 정도가 높은 외설성과 폭력성(하지만 19세 이상 관람가로 두기에는 성장물이라는 장르의 한계에 의해 불가능하며, 그럴 만큼 외설적이거나 폭력적이지도 않다), 애니메이션의 인기를 이용한 관련 상품의 판매, 가깝게는 신작 극장판(Rebuild of Evangelion) 제작 등으로 이 애니메이션은 많은 애니메이션 팬들의 분노를 샀다. 특히, 거의 무책임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만큼 난해하고 산만한 구성의 최종화(극장판 The END OF EVANGELION 第26話 まごころを君に)는 더욱이나 이 작품에 대한 악평이 쏟아지는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악평이 빗발치는 작품이라고 해도, 그 완성도 자체는 특히 요즈음 범람하는 미소녀 애니메이션들에 비해 낮다고 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 작품이 1995년작이고 TV 시리즈라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장면의 연출이나 색감, 작화 등에서는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전작인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와 비교해 볼 때 특히 작화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으며, [바람의 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볼 수 있던 특유의 액화 장면(거신병이 쓰러지는 장면이 안노 히데아키가 담당한 부분이다)은 최종화에서 그 모습을 다시 보였다. 전작 [나디아]에서부터 음악을 담당했던 사기스 시로의 사운드트랙 역시 극중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산만하고 불성실한 극장판은 작화나 음악 면에서만은 TV 시리즈에 비해 완성도 높은 면모를 보였다.

 이 때문에, 이 작품에 가해진 극도의 혹평은 작품 자체만큼이나 그 배경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난삽하기 그지없는 후반부의 내용과 부실한 종결이 텔레비전 방영이라는 한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더욱 그러하다. 1~2쿨의 짧은 작품이나 혹은 조기종영되는 많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신세기 에반겔리온] 역시 26화 완결작이라는 제약을 안고 있다. 25화 [끝나는 세계終わる世界/Do you love me?]/[Air/Love is destructive.]와 26화 [세계의 중심에서 '나'를 외친 괴물世界の中心でアイを叫んだけもの/Take care of yourself.]/[진심을 그대에게まごころを君に]는 지나친 급전개에 의해 발생하는 문제를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즉, 이 작품의 난해한 면은 그 내용뿐만 아니라 1~2쿨의 짧은 애니메이션 제작에 익숙하지 않은 제작진의 실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다룬 '인류 보완'의 개념도 이와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이 개념 자체는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Childhood's End]에서 비롯된 것으로, 비록 Komm,Susser Tod来たれ、甘き死よ에서 볼 수 있는 용해 장면과 같이 시각적인 충격을 주지는 않지만 [유년기의 끝]에서도 완전히 함께 행동하는 인류의 아이들이나 흡수되어 버린 지구처럼 운명론적이며 묵시록적인 상징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26화 [진심을 그대에게]에서 볼 수 있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강조에 대비된다. 하지만 그 소재에 있어서 이 작품의 후반부는 여러 다른 작품, 특히 과학 소설에 의존하고 있다. 이 작품을 비판하는 이들의 주장대로 이러한 부분은 짜깁기에 기반하며, 종종 이 작품과 함께 (흔히 오타쿠로 잘못 불리우는) 일본 문화 소비자들의 문화 코드로 여겨지기도 하는 나스 키노코나 마에다 쥰의 텍스트 게임(나스 키노코의 작품으로는 [月姫], [空の境界], [Fate] 등이 있으며, 마에다 쥰의 작품으로는 [Kanon], [Air], [Clannad] 등이 있고, 각각 텍스트 게임 시나리오 작가들이다)들과 마찬가지로 독창적이지 못하고 어느 정도 컬트적인 내용(이 점에서 마에다 쥰은 안노 히데아키나 나스 키노코와 다르다. 그의 작품에서는 컬트적이기보다 보편적이며 감성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어, 이 둘과 다르게 취급되기도 한다)을 닮았다. 이 때문에 더더욱 상업성에 대한 비판에서 이 작품은 벗어날 수 없다. '인류 보완 계획'은 이러한 이 작품의 성격을 극명히 드러낸다.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 축이 결국은 이전에 사용되었던 주제에 대한 오마주에 불과하다는 점은 그만큼 작품이 다룰 수 있는 내용을 제한한다.

 하지만 패러디적 속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케로로 군조]나 [스즈미야 하루히]에 대한 애니메이션 팬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볼 때, 이 작품을 애니메이션 팬들의 혐오 대상으로 전락시킨 것은 그러한 속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제작진의 무책임한 태도일 것이다. GAINAX의 작품들 [왕립우주군 - 오네아미스의 날개]나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등에서 안노 감독을 필두로 한 제작진은 매니아 계층이라고 해도 충분히 상업적인 수준의 작품을 제작할 수 있음을 입증했지만, 이 작품, 그리고 특히 후반부에서 제작진은 매우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외주 제작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대규모의 제작사도 아니었을 뿐더러 CG 역시 널리 사용되지 못했던 1995년 당시의 상황(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 이외에는 처리할 수 없었다고 한다)에 의해, 1주 1회의 방영을 유지하면서 작화의 품질을 떨어뜨리지 않기는 어렵다. 시나리오 작가가 아닌 작화 분야에서 출발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안노 히데아키에게 후반부 구성을 보완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는 것도 상당 부분 그 이유가 된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은 용두 사미라는 한계를 거의 노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특히 TV 시리즈 23화 淚/Rei III 이후의 내용 전개는 그야말로 멈출 수 없는 폭주로 치닫는다. 아야나미 레이의 자폭으로 인한 제 3 신동경시의 소멸은 개연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그렇다면 가출해 있던 아스카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의문, 또는 NERV 본부는 어떻게 무사할 수 있었는지를 작품은 설명할 수 없다. 그 이후에 있어서도 작품을 그나마 볼 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던 구성들은 붕괴한 것이나 다름없다. TV 시리즈 25화에서 연출이라 할 만한 요소는 정지 화면을 이어 놓은 듯한 느낌을 주는 일련의 회상들이며, 26화의 '보완' 과정 역시 리테이크된 셀로 만들어진 듯 서투른 수준이다. 일부의 팬들은 이런 결말을 오히려 극장판에 비해 선호하지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 분명 TV 시리즈의 결말은 (1960년대의 애니메이션과 비교하더라도) 가히 최하 수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한 설정을 즐기는 매니아 계층의 일원으로서 제작진은 실감하지 못했을지 모르나, 편수가 많지 않은 1~2쿨의 애니메이션에서, 방영 내용만으로는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의 복잡하거나 방대한 구성 혹은 복선을 채택하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 안노 히데아키 자신이 밝혔듯이 이런 복선들이 작품의 주된 내용과 무관하게 단지 재미를 위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특히 이 설정들은 더욱 작품에 있어 위험하다. 줄거리만으로는 주된 적들의 이름이 아담과 릴리스와 샤키엘과 타브리스가 아니라 해도, 오프닝에 세피로스의 나무 따위가 등장하지 않는다 해도, (에반겔리온 극장판을 17세 미만 관람불가로 만들고 시청자들에게 심한 혐오감을 준)아스카의 2호기가 뜯어먹히는 장면이 없었다 해도 작품의 전개에는 어떤 무리도 없었을 것이다. 사해 문서나 십자가에 롱기누스의 창으로 고정된 릴리스의 주검과 같은 유대 교-크리스트 교적 상징들은 작품의 줄거리에서 무의미하며 '빠진 고리missing link'의 수만 늘리는, 불필요하고 해결되지 못한 복선이다. 안노 히데아키는 건담이나 은하철도 999와 같이 복잡하고 방대한 설정을 가진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는 그러한 작품들이 최소한 2기 8쿨 이상의 TV 시리즈와 두 개 이상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지나치게 '심각한'접근 방식은 장애가 될 뿐이다. 몇몇 사정 모르는 이들의 말처럼 불후의 명작도 아니며, 일부 애니메이션 팬들의 말처럼 낚시에 급급한 졸작도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청소년 성장물이라는 틀을 최대한 '재미있게' 각색한, 굳이 분류하자면 영국 등지의 환상 문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소년 문학Young-Adult Fiction'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안노 히데아키 자신이 말했듯이, 그리고 몇몇 비평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이 작품은 성장 소설을 소름 끼치는 장면과 선명한 원색으로써 그려 낸 '잔혹한 유희의 명제' 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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