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D. Completely.  
Front Page
Tag | Location | Media | Guestbook | Admin   
 
'애절함 계열' 100제 - 돌아보지 않는 등
 '저기요,'

 느닷없는 목소리에 나는 책에서 잠시 눈을 돌렸다. 내 뒤에는 언제나 도서관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눈동자 맑은 소년이 한 명 서 있었다. 뭔가 내게서 얻어 낼 것이 있었는지, 그는 내 눈을 못박듯 똑바로 쳐다보았다. 내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황갈색 눈, 아마도 그 소년은 해안 지대 출신이었으리라. 어쩌면 나처럼 맑은개울 출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전체적인 인상을 훑었다.

 자신을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은 내 팔목을 잡아 그 또래의 젊은이들이 여럿 모여 있는 곳으로 가볍게 끌고 걸어갔다. 그다지 유별난 일은 아니었다, 어쨌건 탑에는 그런 자잘한 수련생들이 많았기에. 정규 과정을 모두 마친 마술사가 되기 전에 수련생들을 내륙으로 보내 수많은 탑에서 공부하게 하는 것은 자녀를 마술사가 되게 하려는 부모들에게 있어서 지극히 흔한 일이었다. 때로는 더 어린 시절 같은 스승에게 배운 이들끼리 모여, 때로는 비슷한 의견을 가진 이들끼리 때로는 비슷한 출신의 소년들끼리 모여서 그들은 항상 유쾌한 목소리로 재잘거리고 있었다.

 소년은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는지, 그가 나를 데려간 곳에 모여 있던 젊은이들은 대부분 잘 다듬은 듯 말쑥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얼굴에 띤 표정들조차 풍상을 맞지 않아, 티없이 밝고 순수하다는 느낌이었다. 모든 어린이들이 결국 늙어 어른이 되기 전에 짓는 바로 그 표정을 그들은 계속 띠고 있었다.

 손에 잡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그 아이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단지 키가 크고 흉터투성이의 얼굴을 반쯤 가렸기에 그들보다 나이들어 보였을 뿐, 내가 그들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 왔다고는 결코 할 수 없었기에 '아이' 라는 표현은 어느 정도 수사적인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들을 바라보면 나는 너무나 이질적인 향수를 느꼈다. 결국은 나와 큰 차이 없는 길을 걸어가면서도 내가 결코 갖지 못했던 밝고 순수한 표정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소년들을 바라보면, 내 삶에서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젊은 날이 떠올랐고, 그래서 나는 그들을 좋아했다.

 소년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기에, 나는 소리 없이 빙긋이 웃었다, 어쨌든 얘기를 하고 싶었기에. 그들이 꺼낼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할 바였지만 - 어쩌면 그들은 단지 어떤 학문적인 문제로 정규 마술사의 도움을 필요로 할 뿐인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순수한 의미에서 소년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게 된 지는 오래였기에.

 '있잖아요, 선생 - '

 나를 끌고 간 바로 그 아이가 말을 꺼냈다. 그 수많은 아이들 중에서도 온 몸에 두르고 있던, 진줏빛 감도는 청회색 천 때문에 눈에 띄는 아이였다. 아마 가장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거나, 가장 오래 수련했거나, 아니라면 가장 능력있는 아이가 아니었을까, 그 아이가 해야 할 말은 무엇일까.

 '뭡니까.'

 평소와 같이 나는 답했다. 그 누가 묻는다 해도 절대 바꾸지 않은, 그리고 바꾸지 않을 대답이었다.

 '이 이론을 누가, 어떻게 만든 거죠?'

 두툼한 상아색 종이로 솜씨 있게 제본된 수첩을 내게 내밀면서, 아이는 처음과 다름없이 맑으면서도 묘하게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특별히 실례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수련생들이 자신의 스승에게, 또는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마술사에게 질문하는 것은 그것이 그 아무리 기본적인 문제라고 해도 결코 금기가 아니었고, 무례조차 되지 못했다. 오히려 대답하지 않거나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이 무례였으리라고, 나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예법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제가 구할 수 있던 책들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어서...'

 찌푸린 눈살을 의식했는지, 그 아이는 질문에 비해서 부드러운 어조로 덧붙였다. 하지만 그것이 무례가 아니었다고 해도, 굳이 그런 지식에 의존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책을 더 찾아보세요.'

 짧게 답하고 나는 그의 손을 뿌리쳐, 다시 앉아 있던 모퉁이로 걸어갔다.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고도 할 수 없었지만, 굳이 인격적인 모멸감이라는 식의 학문적인 이유를 덧붙일 필요는 없었다. 그들에게 유쾌함과 밝음과 어린 시절의 그 모든 것이 있었다면, 그들에게 즐겁게 웃고 떠들 수 있는 동료가, 친구가 있었다면 그 모든 걸 거친 내겐 결국 책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것들밖에는 남지 않았다. 그들보다 많아야 두 해나 더 살았을까, 어쩌면 더 적은 햇수를 거쳐 왔을지도 모르는 내게 남은 것은 결국 수많은 책들뿐이었다.

 영원히 그런 어두운 머릿속에서만 살아갈 것이라는 느낌이 싫어서, 어두운 구석에 앉았다. 내게 남은 것은 결국 쓸쓸한 지식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다시는, 다시는 돌아보지 않겠노라고, 이전에도 몇 번 반복했던 맹세를 했다.

 나의, 그리고 그들의 돌아보지 않는 등 뒤가 따스할 정도로 친숙하게 서늘했다.

- Glycolysis Human(?) 건 때문에 간만에, 글을 한 편 씁니다.
실은 머리가 너무 아파서... 화학 노트 정리하다가 화학 노트에 써버렸습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BLOG main image
Si man i yulma nin enquantuva?
 Notic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108)
공지/방명록 (3)
일상 (3)
(1)
이야기 (17)
번역물 (20)
씹어대기 (0)
기타 창작 (32)
On LotR (10)
Watching Animations (22)
 TAGS
불의넋 The Project OST NGE 검색어순위 삽질 TSP 삽질성 패러디 과학삽설 추천곡 UQW
 Calendar
«   2009/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Entries
앞으로의 계획
블로그 재개장.
갑자기 궁금한지라... (1)
블로그 닫습니다. (1)
NGE 화보집 인물소개 번역 01. Ritsuko Akagi
REIDEEN ED - 駆け足の生き様
개념글 (2)
먼 바람이 들려오는 곳 06.01. (2)
먼 바람이 들려오는 곳 prologue (2)
Ode to Ritsuko AKAGI 2
 Recent Comments
절대 공감입니다! 특..
테시 - 2008
오오....자작시이신..
테시 - 2008
그렇죠 그렇죠 페아..
Asuka Feanaro HR - 2008
저도 페아노르 너무..
테시 - 2008
네 그렇습니다 여자..
WindFish - 2007
때가 될 때까지 기다..
Tumnaselda - 2007
음역이 대세인 듯하..
Asuka_Feanaro - 2007
antithesis -> 안티..
iqoo - 2007
...별로 오덕하지 않..
Asuka_Feanaro - 2007
;;; 저도 Atkins에게..
Asuka_Feanaro - 2007
 Recent Trackbacks
2007년 초여름 『신..
[미르기닷컴] 外傳
2007년 『신세기 에..
[미르기닷컴] 外傳
 Archive
2007/11
2007/10
2007/09
2007/08
2007/07
 Link Site
강철의 가택연금술사
명랑사회 선진조국 - ..
벨푼트의 호숫가 산장
산왕의 건전성추구위원회
 Visitor Statistics
Total : 56,278
Today : 13
Yesterday : 23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