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인들, 그 중에서도 무슨 이유인지는 도저히 모를 일이지만 특히 스스로 인문학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과학에 대해 수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 이런 오해의 엄청난 숫자와 엄청난 비현실성은 굳이 따로 거론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일 따름이기에, 대부분의 과학자들, 혹은 과학에 대해서 약간의 개념이나마 가지고 있는 이들은 오히려 이런 사실들을 지적해야 한다는 점에 이유 없는 죄책감을 느낀다.
이런 오해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인문학적 상대성과 과학적 절대성에 대한 오해인데, 인문학에 과학적 방법론이 적용되게 된 것은 인문학을 위해서는 행운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문학의 상대성이 과학에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수많은 자칭 인문학자들은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인문학적 현상들을 해석하는 여러 가지 방법론과 여러 가지 결론이 있을 수 있다 해서, 자연 현상도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과학 혁명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이후로, 과학철학적으로 볼 때 과학적 사실이 갖는 특징을 반증 가능성으로 보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는 곧, 변인 통제와 적절한 대조군을 포함하는 수 차례의 실험에 의해서 어떤 이론이나 사실을 입증하거나 반증할 수 있을 경우에만 이 이론을 과학적인 명제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과학은, 최소한 제대로 된 과학은 결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이미 알려진 사실을 속이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 유치한 비유이긴 하지만, 누가 자기를 지키겠다고 자기 무덤을 파고 있겠는가?
따라서, 과학 이론이 시대를 거처 아무리 변한다고 해도, 그리고 시대를 거쳐 가면서 이론들을 도출해 내는 데 쓰인 방법론이 약간이나마 변한다고 해도, 최소한 내가 공부하고 있는 생물학에서는 과학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 언제나 하나뿐이며 항구여일하고 절대적이다. 흔히 현대의 인문학자들 중에는 이런 믿음이 종교와 무엇이 다르냐면서 씹어 대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주라는 하나의 계(system)가 움직이는 기본적인 원리에 서로 상충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을 하나의 계로는 분류할 수 없다는 것은 증명할 필요도 없이 자명하다. 결국, 최소한 어떻게 보아도 비교적 균일하고 극단적이지 않은 환경의 지구에서 측정할 수 있는 자연 법칙은 그 역시 균일하고, 그 역시 극단적이지 않다는 것을 최소한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현대 철학이 말아먹은 자유, 평등 따위의 수많은 다른 관념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진리라는 관념 역시 철학적으로 변용되는 것을 너무나 자주 볼 수 있다. 철학적인 의미에서 진리는 관측에 따라서 변하지 않는 "본질"을 뜻하지만, 과학적인 의미에서 진리라는 것은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인간의 관측 결과를 토대로 해 얻은 것이다. 굳이 인간이 관측할 수 없는 것을 과학이 증명하려 하지 않는 것은 과학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건 원래부터가 과학이 다루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문학자들에게 분자의 회전 운동을 인문학적으로 설명하라고 한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과학자의 윤리성에 대해서는 사실 인문학자들뿐만 아니라 과학자들도 충분히 우려하고 있는 문제라는 것을 또한 말해 둘 필요가 있다. 최소한 리처드 파인만과 같이 과학 연구는 항상 윤리적으로 중립적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자는 요즘에 찾기 힘들다. 그런 과학 연구를 사람들이 어떻게 말아먹는지 모르는 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점 역시, 과학의 문제라기보다는 과학이 이용되는 사회의 문제로서, 과학자들은 과학자가 아닌 사회의 일원으로서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윤리성에 대한 해답을 과학에서 찾는 것은 연목 구어일 뿐이다. 그런 식의 절대적인 진리가 필요하다면, 오히려 과학보다는 수학에 대해서 어줍잖은 지식을 쌓는 것이 어떻겠는가?
물론 과학도라고 하기에는 퍽이나 난감하지만, 과학을 약간이나마 배운 입장에서 학자를 자처하는 자들의 이런 망언은 들어 주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해서 짧은 rant를 이제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