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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함 계열' 100제 - 037. 빛과 그림자

 둔탁한 소리를 내어 미닫이문이 열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그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미닫이문을 힘주어 억지로 열었다. 그런 식의 바보짓을 하다가 부순 물건이 한둘은 아니었지만, 워낙에 비위가 약했던 내게 있어서 방 안을 맴돌던 향료는 거의 중독적으로 뇌를 자극해 왔기에 어떻게 해서든 문을 열고 싶었다. 문을 열어야 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막무가내로 그렇게 나는 손 끝에 무리한 힘을 주었다. 지나친 과대 포장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때 나는 그 문의 역사를 바꾸었으리라, 그들이 내 개인사를 바꾸어 온 것처럼.

 문에는 열쇠 구멍이 있었지만, 자물쇠나 열쇠의 본을 뜰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문을 잠그고 불을 지르려는 생각을 곧 버렸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상황을 끝맺어 버릴 거의 하나뿐인 방법이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고 내가 서 있던 처마 밑 짙은 그림자 속을 불로 더럽히고 싶지도 않았다. 비구름언덕이든 맑은바람이든 굳이 나를 찾아 따라나올 작자들은 아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과정은 복잡했지만, 기억을 잊는 의식을 어딘가에서 나는 분명히 본 적이 있었다.

 선명히 기억하지 않는 일은 잊을 수 없다는 제약이 있는 의식이었다. 그들에 대한 선명한 기억은 얼마나 많던가, 특히 그 둘과 연관된 기억은 너무나 뚜렷했다. 귀한 가문에서 자라나 언제나 눈부신 비단옷을 걸치고 다니던 그들은 일부러 무시하려 하지 않는 한 항상 눈길을 끄는 이들이었다. 비록 지극히 진부한 이야기를 할 뿐이었지만 그들의 성적은 나로서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우수했다. 동경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그들을 경계하듯 주시해야만 했다. 같은 학급에 있던 비구름언덕과, 내게 하급생이 생겼을 때에는 이미 졸업을 앞두고 있던 맑은바람, 그 둘은 너무나 가까운, 그리고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그들과 부딪칠 리 없었던 그 때였지만, 나는 그것만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들과 처음 부딪친 것은 내가 그 때, 밖으로 굽은 땅의 가설을 말했을 시점이었다. 그 때 맑은바람이 내게 했던 질문은 얼마나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던가. 그것은 나로서는 너무나 어이없는 질문이었다. 차라리, 면박이었다고 해야 하리라. 내 이론조차도 이해하지 못한 그는 내가 읽고는 있었지만 절대로 이해할 수 없던 그 책들을 어떻게 모두 외고 있던 것이었을까, 그 자신도 이해하지 못했던 그것들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책을 왼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이었을까?

 그 때 흐릿한 피의 향기가 감도는 푸른빛 횃불이 켜진 그 곳에서 나는 마치 숨이 다할 것처럼 가쁜 박자로 그 이론을 읊고 있었다. 하나라도 제대로 논증하지 못할 경우에 이론의 생명은 없었기에, 내가 본래 적어 왔던 그 어떤 글보다 더 긴 발표였다. 횃불마저 본래의 빛깔을 잃고 서서히 붉게 잠들고 있었다. 목마저 쉬어 더 이상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공명심과 자신감이 묘하게 섞인 채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오래도록 이야기했다, 지루하기만 했던 수많은 책들을 다시 뒤져 볼 필요는 없으리라고 생각했기에. 다시는 학술 서적을 보지 않더라도, 그 이론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수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그 발표의 수많은 착오 중 하나였다.

 검은 뿔테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비웃듯 가만히 듣고 있던 그 거무스름한 청년이 몸을 일으켰을 때 나는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언제나 거슬리도록 길게 늘어지는 그 말투는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불쾌할 뿐이었다. 이해할 수도 없는 소리를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떠들고 다녀서 더욱 그랬을까, 말투 때문에 이해할 수조차 없던 것이었을까? 비록 그가 배운 분야는 내가 배운 것과는 달랐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읽은 책을 내가 읽지 않았을 리도 없었다. 애초에 한 이론이 선 배경을 무시하고 그 이론에 대해 물을 수도 없는 일, 그가 무슨 질문을 한다 해도 결국 그 이론에 대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그리고 그가 질문한 것은 너무나 간단하고, 내 발표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만 제기할 수 있는 문제였다, 밖으로 굽은 세계가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있을 수 있는가 하는.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무너진다는 말이 얼마나 개념을 잘못 이해한 사람이 할 말인지 내가 설명했을 때, 그가 한 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그런 개념을 저는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라 할 말이 없군요. 게다가 제가 질문한 것은 그 개념 자체가 아니고 맑은개울 님의 발표에 임하는 태도입니다.'

 내가 그 어이없는 질문에 정신을 차리고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을 때, 횃불은 잠시 깜박이다가 꺼졌고, 회장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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