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D. Completely.  
Front Page
Tag | Location | Media | Guestbook | Admin   
 
먼 바람이 들려오는 곳 06.01.
소년이 어디까지 가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사실, 알 필요도 없었다. 해안을 따라 나지막한 언덕이 이어져 있었지만 그 외에 어느 쪽으로 가는지 표시할 만한 것이라고는 찾기 어려웠다. 남은 돈으로 어디를 향할지 고민하다가, 바닷가가 아름답다는 이 곳을 찾아서 왔을 뿐이었다. 정류장을 나오기가 무섭게 더위를 피해 별 생각 없이 바다를 찾아 내려왔다. 굵직한 바위가 흩어져 있는 길도, 주위를 드문드문 가리우던 나무도, 집에서는 본 적 없던 푸른 하늘조차도 바라보지 않았다. 더위와 그리고 어지러이 울리는 목소리를 피해서 아래쪽으로만 걸어갔다. 바닷가를 찾을 때까지. 하지만, 멈추어 서기에 그 흰 모래는 너무나 뜨거웠다. 신발 안으로 들어온 투명한 파편이 발가락을 계속 찔러 댔다. 신경쓰지 않으려 하며, 나는 걸었다.

발바닥을 조여 오는 통증으로, 상당히 먼 거리를 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바닷가에 흔할 법한 마을은 없었다. 여관도, 식당조차도 없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계속 같은 빠르기로 걸어가는 소년에게서조차 그 어떤 인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분명히 소년은 내 키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지만, 여전히 그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어디선가 맡은 듯한 비릿한 냄새만 코끝을 스쳤다.

'계획대로야.'

누군가에게서 들은 말을 별 생각 없이 내뱉었다. 사실, 계획하지 않은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인기척 없는 해변, 맑디맑은 하늘,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차라리 축복받은 그 시간까지도 모두, 학생부장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 계획을 세우게 된 원인조차도 어쩌면 괴로움을 달래기 위한 또 다른 계획이었을까. 절정으로 갈수록 음이 올라가지 못하는 소년의 노래를 계속 들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쨌든 이 날은, 그리고 앞으로의 한 달은, 내 손끝에 붉게 물들어 지워지지 않을 터이니. 붉은 줄은 쉽게 끊을 수 없는 것이 아니던가. 나는 다시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배가 고팠다. 어제 학교를 나오면서 먹은 점심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음식을 살 곳은 있었지만 음식에 돈을 쓰고픈 생각은 없었다. 얼마 안 되는 재산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생필품들은 한 달 동안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방에 버려 둔 채로, 나는 혼자 이 곳까지 왔다. 책과 돈이 든 작은 배낭만을 하나 지고서. 하지만 그것조차 가볍지는 않았다. 뜨거운 햇살과 함께 땀에 젖은 등이 이제라도 곧 무너질 듯 짓눌렸다. 더 걸을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계속 소년을 따라갔다. 어쨌건, 이 이야기에도 필연성은 없을 바에야 무엇이 나타나 줄지 모르는 일이 아니겠는가. 여태까지 억지로 참던 두통이었지만 이제는 온 정신을 쏟아서 무시해야 할 정도로 심했다.

소년은 계속 걸어가고 있었지만, 노래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소년은 잠시 뒤를 돌아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걸어갔다. 목이 탔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발에 박힌 모래알이 날카롭다고 생각하며, 나도 걸어갔다.


BLOG main image
Si man i yulma nin enquantuva?
 Notic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107)
공지/방명록 (3)
일상 (2)
(1)
이야기 (17)
번역물 (20)
씹어대기 (0)
기타 창작 (32)
On LotR (10)
Watching Animations (22)
 TAGS
삽질성 패러디 과학삽설 불의넋 The Project OST 삽질 검색어순위 UQW 추천곡 NGE TSP
 Calendar
«   2008/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Recent Entries
앞으로의 계획
블로그 재개장.
갑자기 궁금한지라... (1)
블로그 닫습니다. (1)
NGE 화보집 인물소개 번역 01. Ritsuko Akagi
REIDEEN ED - 駆け足の生き様
개념글 (2)
먼 바람이 들려오는 곳 06.01. (2)
먼 바람이 들려오는 곳 prologue (2)
Ode to Ritsuko AKAGI 2
 Recent Comments
절대 공감입니다! 특..
테시 - 08/07
오오....자작시이신..
테시 - 08/07
그렇죠 그렇죠 페아..
Asuka Feanaro HR - 06/23
저도 페아노르 너무..
테시 - 06/12
네 그렇습니다 여자..
WindFish - 2007
때가 될 때까지 기다..
Tumnaselda - 2007
음역이 대세인 듯하..
Asuka_Feanaro - 2007
antithesis -> 안티..
iqoo - 2007
...별로 오덕하지 않..
Asuka_Feanaro - 2007
;;; 저도 Atkins에게..
Asuka_Feanaro - 2007
 Recent Trackbacks
2007년 초여름 『신..
[미르기닷컴] 外傳
2007년 『신세기 에..
[미르기닷컴] 外傳
 Archive
2007/11
2007/10
2007/09
2007/08
2007/07
 Link Site
강철의 가택연금술사
명랑사회 선진조국 - ..
벨푼트의 호숫가 산장
산왕의 건전성추구위원회
 Visitor Statistics
Total : 55,483
Today : 1
Yesterday : 7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