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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어디까지 가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사실, 알 필요도 없었다. 해안을 따라 나지막한 언덕이 이어져 있었지만 그 외에 어느 쪽으로 가는지 표시할 만한 것이라고는 찾기 어려웠다. 남은 돈으로 어디를 향할지 고민하다가, 바닷가가 아름답다는 이 곳을 찾아서 왔을 뿐이었다. 정류장을 나오기가 무섭게 더위를 피해 별 생각 없이 바다를 찾아 내려왔다. 굵직한 바위가 흩어져 있는 길도, 주위를 드문드문 가리우던 나무도, 집에서는 본 적 없던 푸른 하늘조차도 바라보지 않았다. 더위와 그리고 어지러이 울리는 목소리를 피해서 아래쪽으로만 걸어갔다. 바닷가를 찾을 때까지. 하지만, 멈추어 서기에 그 흰 모래는 너무나 뜨거웠다. 신발 안으로 들어온 투명한 파편이 발가락을 계속 찔러 댔다. 신경쓰지 않으려 하며, 나는 걸었다.
발바닥을 조여 오는 통증으로, 상당히 먼 거리를 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바닷가에 흔할 법한 마을은 없었다. 여관도, 식당조차도 없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계속 같은 빠르기로 걸어가는 소년에게서조차 그 어떤 인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분명히 소년은 내 키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지만, 여전히 그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어디선가 맡은 듯한 비릿한 냄새만 코끝을 스쳤다.
'계획대로야.'
누군가에게서 들은 말을 별 생각 없이 내뱉었다. 사실, 계획하지 않은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인기척 없는 해변, 맑디맑은 하늘,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차라리 축복받은 그 시간까지도 모두, 학생부장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 계획을 세우게 된 원인조차도 어쩌면 괴로움을 달래기 위한 또 다른 계획이었을까. 절정으로 갈수록 음이 올라가지 못하는 소년의 노래를 계속 들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쨌든 이 날은, 그리고 앞으로의 한 달은, 내 손끝에 붉게 물들어 지워지지 않을 터이니. 붉은 줄은 쉽게 끊을 수 없는 것이 아니던가. 나는 다시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배가 고팠다. 어제 학교를 나오면서 먹은 점심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음식을 살 곳은 있었지만 음식에 돈을 쓰고픈 생각은 없었다. 얼마 안 되는 재산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생필품들은 한 달 동안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방에 버려 둔 채로, 나는 혼자 이 곳까지 왔다. 책과 돈이 든 작은 배낭만을 하나 지고서. 하지만 그것조차 가볍지는 않았다. 뜨거운 햇살과 함께 땀에 젖은 등이 이제라도 곧 무너질 듯 짓눌렸다. 더 걸을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계속 소년을 따라갔다. 어쨌건, 이 이야기에도 필연성은 없을 바에야 무엇이 나타나 줄지 모르는 일이 아니겠는가. 여태까지 억지로 참던 두통이었지만 이제는 온 정신을 쏟아서 무시해야 할 정도로 심했다.
소년은 계속 걸어가고 있었지만, 노래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소년은 잠시 뒤를 돌아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걸어갔다. 목이 탔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발에 박힌 모래알이 날카롭다고 생각하며, 나도 걸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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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하늘에 선을 긋는 비행기구름의 흰빛은 계속 어디까지든 계속 이어져 가네 내일을 안 것만 같아
그다지 맑다고는 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기실, 내 눈빛만큼이나 그리고 내가 이 곳에서 지내야 하는 한 달만큼이나 탁한 노래였다. 날씨는 청명했지만, 그 바닷가를 거니는 잿빛 소년은 침울하게만 보였다. 1개월간 정학이라는 선고로 도망쳐 나온 해변이 아니었던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흐릿한 기간이었기에 더 그렇게 느껴졌다. 어쨌건, 돌아갈 수는 없었으니. 뒤에는 기간을 어겼다며 1개월을 2개월로, 2개월을 6개월로 늘려 놓을 학생부장이 있었고, 앞에는 내가 정학되었다는 사실도 그 사실이 갖는 의미도 모르는 가족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 과정에 대해서 설명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고, 덕분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단지 졸업 날짜뿐이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웃으며 손을 흔들 수 있는 날을 위해서. 하지만, 그 날짜도 이제는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벌점은 벌점을 부른다. 그리고 그것은 정학을, 퇴학을 부른다. 이제 영원히 이 곳에 남아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결과 함께 성적도 넘실대며 위험선을 천천히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더욱이나, 무료하기 그지없었다. 단지 그 흰빛 바닷가를 거닐며 한 달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그 다음 달은 시험이었지만, 그런 시험에 대비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제 무엇을 해도, 소용이 없잖겠는가. 가볍게 웃는 편이 나으리라고 생각하며 나는 그 소년을 쫓아갔다. 계속 이어져 가는 흰빛을 따라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나는 자랑할 점 하나 없는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고, 이 세계가 평범한 인간에게 결코 이롭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설령 이끌려 가는 그 곳에 어떤 위협이 있다 한들 그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미 내 삶에 있어서 정해진 목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행기구름이 산 너머에서 끊겨 있었다. ------------------------------------------------------------------------------------ 준-15금(?) 시나리오의 prologue입니다. 글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때문에 철저하게 백합물입니다(...) 15금이 된 이유는, 필력이 부족해서 19금 장면 따위는 절대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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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오듯 내리는 불꽃 속 희미한 메아리 더운 피를 흘리는 쇳덩이 위에 희미하게 빛나는 머리카락 한 올만 흐르듯 고즈넉히 누워 있는 곳 한여름을 메우는 더위는 물결처럼 식어 가는 살결을 감싸네 무쇠로 빚은 손끝 스쳐 가는 아픔은 그 누군가의 꿈만을 울릴 뿐 머리 위를 헤매는 잿빛 인형의 혼이 무엇을 찾아 웃음짓고 있는가 터질 듯 흔들리는 철벽조차 마지막 어린 한숨을 들이쉬는 하루 흰 옷자락을 적신 씁쓸한 물결은 코끝을 에는 살빛이었지만 모든 것이 정해진 그 날의 신음은 다시 채워지는 세계에 아직 퍼져 간다 종말이 오기 전에 심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바라보며 붉은 하늘 아래 피비린내 풍기는 호수에는 창백한 얼굴이 떠오르리라 씻기워 사라진 줄기를 더듬으면 그 곳엔 다시 선홍색 싹이 자라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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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써 본 '가사' - Darkstorm's S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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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eak is the world, mother of all I hear them fall, I see them call Wandering, the gloomy night Lingers ever beside.
Hear the grey waves roll again Light it was, in tides of bane So fair is the mist, Now lost is the beast.
Once the doom will come Never to kill, never to die Still bright is the starlit dome Yet I see you not in my eye
What I see is where I dwell What I face is where I left I break the cell, I see it swell In the streams I drif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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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절함 계열' 100제 - 037. 빛과 그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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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둔탁한 소리를 내어 미닫이문이 열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그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미닫이문을 힘주어 억지로 열었다. 그런 식의 바보짓을 하다가 부순 물건이 한둘은 아니었지만, 워낙에 비위가 약했던 내게 있어서 방 안을 맴돌던 향료는 거의 중독적으로 뇌를 자극해 왔기에 어떻게 해서든 문을 열고 싶었다. 문을 열어야 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막무가내로 그렇게 나는 손 끝에 무리한 힘을 주었다. 지나친 과대 포장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때 나는 그 문의 역사를 바꾸었으리라, 그들이 내 개인사를 바꾸어 온 것처럼.
문에는 열쇠 구멍이 있었지만, 자물쇠나 열쇠의 본을 뜰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문을 잠그고 불을 지르려는 생각을 곧 버렸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상황을 끝맺어 버릴 거의 하나뿐인 방법이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고 내가 서 있던 처마 밑 짙은 그림자 속을 불로 더럽히고 싶지도 않았다. 비구름언덕이든 맑은바람이든 굳이 나를 찾아 따라나올 작자들은 아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과정은 복잡했지만, 기억을 잊는 의식을 어딘가에서 나는 분명히 본 적이 있었다.
선명히 기억하지 않는 일은 잊을 수 없다는 제약이 있는 의식이었다. 그들에 대한 선명한 기억은 얼마나 많던가, 특히 그 둘과 연관된 기억은 너무나 뚜렷했다. 귀한 가문에서 자라나 언제나 눈부신 비단옷을 걸치고 다니던 그들은 일부러 무시하려 하지 않는 한 항상 눈길을 끄는 이들이었다. 비록 지극히 진부한 이야기를 할 뿐이었지만 그들의 성적은 나로서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우수했다. 동경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그들을 경계하듯 주시해야만 했다. 같은 학급에 있던 비구름언덕과, 내게 하급생이 생겼을 때에는 이미 졸업을 앞두고 있던 맑은바람, 그 둘은 너무나 가까운, 그리고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그들과 부딪칠 리 없었던 그 때였지만, 나는 그것만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들과 처음 부딪친 것은 내가 그 때, 밖으로 굽은 땅의 가설을 말했을 시점이었다. 그 때 맑은바람이 내게 했던 질문은 얼마나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던가. 그것은 나로서는 너무나 어이없는 질문이었다. 차라리, 면박이었다고 해야 하리라. 내 이론조차도 이해하지 못한 그는 내가 읽고는 있었지만 절대로 이해할 수 없던 그 책들을 어떻게 모두 외고 있던 것이었을까, 그 자신도 이해하지 못했던 그것들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책을 왼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이었을까?
그 때 흐릿한 피의 향기가 감도는 푸른빛 횃불이 켜진 그 곳에서 나는 마치 숨이 다할 것처럼 가쁜 박자로 그 이론을 읊고 있었다. 하나라도 제대로 논증하지 못할 경우에 이론의 생명은 없었기에, 내가 본래 적어 왔던 그 어떤 글보다 더 긴 발표였다. 횃불마저 본래의 빛깔을 잃고 서서히 붉게 잠들고 있었다. 목마저 쉬어 더 이상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공명심과 자신감이 묘하게 섞인 채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오래도록 이야기했다, 지루하기만 했던 수많은 책들을 다시 뒤져 볼 필요는 없으리라고 생각했기에. 다시는 학술 서적을 보지 않더라도, 그 이론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수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그 발표의 수많은 착오 중 하나였다.
검은 뿔테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비웃듯 가만히 듣고 있던 그 거무스름한 청년이 몸을 일으켰을 때 나는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언제나 거슬리도록 길게 늘어지는 그 말투는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불쾌할 뿐이었다. 이해할 수도 없는 소리를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떠들고 다녀서 더욱 그랬을까, 말투 때문에 이해할 수조차 없던 것이었을까? 비록 그가 배운 분야는 내가 배운 것과는 달랐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읽은 책을 내가 읽지 않았을 리도 없었다. 애초에 한 이론이 선 배경을 무시하고 그 이론에 대해 물을 수도 없는 일, 그가 무슨 질문을 한다 해도 결국 그 이론에 대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그리고 그가 질문한 것은 너무나 간단하고, 내 발표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만 제기할 수 있는 문제였다, 밖으로 굽은 세계가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있을 수 있는가 하는.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무너진다는 말이 얼마나 개념을 잘못 이해한 사람이 할 말인지 내가 설명했을 때, 그가 한 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그런 개념을 저는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라 할 말이 없군요. 게다가 제가 질문한 것은 그 개념 자체가 아니고 맑은개울 님의 발표에 임하는 태도입니다.'
내가 그 어이없는 질문에 정신을 차리고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을 때, 횃불은 잠시 깜박이다가 꺼졌고, 회장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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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de to Ritsuko AKAGI(미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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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스레 울려 오는 나지막한 진동 속에 흐르는 눈물처럼 남겨진 금빛 머리카락 두드려도 두드려도 들리지 않는 가슴의 메아리는 넘실대는 숫자에 묻혀 있구나 수많은 밤을 넘어 걸어온 그 길도 이젠 흩어지는 진홍빛 비가 되어 내리고 잊지 않으리라, 쓰라린 상흔을 더듬는 손 끝엔 짓물러 보이지 않는 낙인이 찍혀 있겠지 날카로운 붓 끝이 스쳐 지나간 발길은 다가오는 종말 속에 길어져만 가는데 그대는 그 완결만을 위해 만들어진 오늘을 끝 갈 때까지 살아 왔는가
붉은 나무의 잿빛 심장이여, 그 빛만큼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세계와 함께 녹아들어가는 영혼을 휘감아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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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limited Quotation Works 캐스팅 전문 ㅡ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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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am the bone of my readings. Notes are my body, and ink is my blood. I have copied over a thousand books. Unaware of the theme, Nor aware of the subject. Withstood pain to create library. Waiting for one's argument. I have no regrets. This is the only path. My whole life was "unlimited quotation works."
- 몸은 책으로 되어 있다. 피는 잉크이며 마음은 종이 수많은 서가를 넘어서도 암기 단 한 번도 지치지 않고 단 한 번도 망각하지 못한다 연사는 여기에 혼자 경전의 언덕에서 문장을 낭송한다 따라서, 생애에 의미는 없으니 이 몸은 무한한 인용으로 되어 있다.
ー体は書に出てきてた 血潮はインクで心は紙 幾たびの書袈を越えて暗記 ただ一度の疲労はなく、 ただ一度の忘はなし。 吟ずる声はここに独り 経典の丘で文章を朗誦する ならば、我が生涯に意味は不要ず。 この体は、無限な引用で出来ていた。
* 아처버전 캐스팅 추가했습니다.
- I am the bone of my readings. Notes are my body, and ink is my blood. I have copied over a thousand books. Unknown was the Theme, Nor known was the Subject. Have withstood pain to create large libraries. Yet, those hands will never write anything. So, as I pray, Unlimited Quotation Works.
(일어버전은 별 차이가 없어서 씹었습니다)
......그냥 UQW에 대한 묘사를 듣고 한 번 써 보고 싶었습니다; (...원문에 맞추느라 실제 풍자(?)하려는 인물과 안 맞는 면이 있군요. 원래 아래쪽 건 일본어로 써야 하는데 독본을 잃어버려서 그냥 한국어 번역버전으로 휘갈겨뒀습니다) 예, 원래 제가 오덕하고 찌질합니다. 그러니까 안 까셔도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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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절함 계열' 100제 - 돌아보지 않는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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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느닷없는 목소리에 나는 책에서 잠시 눈을 돌렸다. 내 뒤에는 언제나 도서관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눈동자 맑은 소년이 한 명 서 있었다. 뭔가 내게서 얻어 낼 것이 있었는지, 그는 내 눈을 못박듯 똑바로 쳐다보았다. 내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황갈색 눈, 아마도 그 소년은 해안 지대 출신이었으리라. 어쩌면 나처럼 맑은개울 출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전체적인 인상을 훑었다.
자신을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은 내 팔목을 잡아 그 또래의 젊은이들이 여럿 모여 있는 곳으로 가볍게 끌고 걸어갔다. 그다지 유별난 일은 아니었다, 어쨌건 탑에는 그런 자잘한 수련생들이 많았기에. 정규 과정을 모두 마친 마술사가 되기 전에 수련생들을 내륙으로 보내 수많은 탑에서 공부하게 하는 것은 자녀를 마술사가 되게 하려는 부모들에게 있어서 지극히 흔한 일이었다. 때로는 더 어린 시절 같은 스승에게 배운 이들끼리 모여, 때로는 비슷한 의견을 가진 이들끼리 때로는 비슷한 출신의 소년들끼리 모여서 그들은 항상 유쾌한 목소리로 재잘거리고 있었다.
소년은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는지, 그가 나를 데려간 곳에 모여 있던 젊은이들은 대부분 잘 다듬은 듯 말쑥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얼굴에 띤 표정들조차 풍상을 맞지 않아, 티없이 밝고 순수하다는 느낌이었다. 모든 어린이들이 결국 늙어 어른이 되기 전에 짓는 바로 그 표정을 그들은 계속 띠고 있었다.
손에 잡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그 아이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단지 키가 크고 흉터투성이의 얼굴을 반쯤 가렸기에 그들보다 나이들어 보였을 뿐, 내가 그들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 왔다고는 결코 할 수 없었기에 '아이' 라는 표현은 어느 정도 수사적인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들을 바라보면 나는 너무나 이질적인 향수를 느꼈다. 결국은 나와 큰 차이 없는 길을 걸어가면서도 내가 결코 갖지 못했던 밝고 순수한 표정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소년들을 바라보면, 내 삶에서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젊은 날이 떠올랐고, 그래서 나는 그들을 좋아했다.
소년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기에, 나는 소리 없이 빙긋이 웃었다, 어쨌든 얘기를 하고 싶었기에. 그들이 꺼낼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할 바였지만 - 어쩌면 그들은 단지 어떤 학문적인 문제로 정규 마술사의 도움을 필요로 할 뿐인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순수한 의미에서 소년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게 된 지는 오래였기에.
'있잖아요, 선생 - '
나를 끌고 간 바로 그 아이가 말을 꺼냈다. 그 수많은 아이들 중에서도 온 몸에 두르고 있던, 진줏빛 감도는 청회색 천 때문에 눈에 띄는 아이였다. 아마 가장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거나, 가장 오래 수련했거나, 아니라면 가장 능력있는 아이가 아니었을까, 그 아이가 해야 할 말은 무엇일까.
'뭡니까.'
평소와 같이 나는 답했다. 그 누가 묻는다 해도 절대 바꾸지 않은, 그리고 바꾸지 않을 대답이었다.
'이 이론을 누가, 어떻게 만든 거죠?'
두툼한 상아색 종이로 솜씨 있게 제본된 수첩을 내게 내밀면서, 아이는 처음과 다름없이 맑으면서도 묘하게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특별히 실례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수련생들이 자신의 스승에게, 또는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마술사에게 질문하는 것은 그것이 그 아무리 기본적인 문제라고 해도 결코 금기가 아니었고, 무례조차 되지 못했다. 오히려 대답하지 않거나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이 무례였으리라고, 나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예법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제가 구할 수 있던 책들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어서...'
찌푸린 눈살을 의식했는지, 그 아이는 질문에 비해서 부드러운 어조로 덧붙였다. 하지만 그것이 무례가 아니었다고 해도, 굳이 그런 지식에 의존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책을 더 찾아보세요.'
짧게 답하고 나는 그의 손을 뿌리쳐, 다시 앉아 있던 모퉁이로 걸어갔다.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고도 할 수 없었지만, 굳이 인격적인 모멸감이라는 식의 학문적인 이유를 덧붙일 필요는 없었다. 그들에게 유쾌함과 밝음과 어린 시절의 그 모든 것이 있었다면, 그들에게 즐겁게 웃고 떠들 수 있는 동료가, 친구가 있었다면 그 모든 걸 거친 내겐 결국 책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것들밖에는 남지 않았다. 그들보다 많아야 두 해나 더 살았을까, 어쩌면 더 적은 햇수를 거쳐 왔을지도 모르는 내게 남은 것은 결국 수많은 책들뿐이었다.
영원히 그런 어두운 머릿속에서만 살아갈 것이라는 느낌이 싫어서, 어두운 구석에 앉았다. 내게 남은 것은 결국 쓸쓸한 지식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다시는, 다시는 돌아보지 않겠노라고, 이전에도 몇 번 반복했던 맹세를 했다.
나의, 그리고 그들의 돌아보지 않는 등 뒤가 따스할 정도로 친숙하게 서늘했다.
- Glycolysis Human(?) 건 때문에 간만에, 글을 한 편 씁니다. 실은 머리가 너무 아파서... 화학 노트 정리하다가 화학 노트에 써버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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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그것은 먼 옛날의 이야기였습니다.'
머리 긴, 성별조차 짐작하기 힘든 도깨비(elf)가 운을 떼었다. 내가 생각하던 도깨비에 비해서는 인간다운 모습이었고, 가장 놀랍게도 이의 숫자와 크기로 볼 때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발음들을 능숙하게 하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그 녀석은 도깨비일 뿐이었다. 굳이 내가 분류학을 공부하고 있어서라기보다도, 그 도깨비의 왜소한 체구와 일그러진 얼굴은 정말 흉악하기 그지없었다. 이봐, 도깨비 씨, 거짓말이라도 한다면 그 길다란 팔을 잡고 돌려 주겠어.
'당신은 이 반지를 보고 계시군요, 하기야 이 반지와 떼어 놓을 수 없는 사연입니다만...'
특징적인, 질리는 말투였다. 바로 이것 때문에 나는 도깨비를 싫어했다. 어떤 괴생명체도, 연구소장의 어설픈 인공 지능 프로그램도 이것보다는 나았다. 너는 작고 끔찍한 꼬마도깨비일 뿐이야, 이 녀석아. 네가 무슨 거만하게 배를 두드리는 부호라도 된다는 거냐. 하긴 도깨비들이야 관광업으로 돈은 많이 벌었지만, 그런다고 해서 덜 흉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덜 짜증나는 것도 아니었다.
'또 뭡니까 이번엔.'
이쯤 되면 나도 어지간히 질렸다. 그 녀석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늘어놓는 그 9세기풍의 장광설은 정말 졸렸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치는 소리가 더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토끼 귀 같은 그 뭉뚝한 귀를 잡아당기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면서 나는 녹음기를 꺼냈다.
'아시겠지요, 배우는 이여, 제게도 들판을 토끼처럼 달리던 시절이 한때에는 있었습니다. 정녕 빛나는 계절이었습니다. 사랑스럽기 이를 데 없는 아름다운 계절이었습니다. 제게 이 반지를 넘기고 간 청년만큼이나 사랑스러운 세월이었지요.'
내가 몇 번씩이나 졸면서도 눈치를 주었지만 도깨비의 말투는 그대로였다. 그처럼 긴 9세기풍 문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말을 막고 싶었다. 하지만 별 수 있겠는가, 그런 지겨운 일은 언제나 신참의 몫이었다. 내가 투덜대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나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어떤 방식으로든 어차피 도깨비에게서 많은 말을 이끌어 내고 기록하는 것이 내 임무였다.
'그 청년을 눈 속에 비출 수 있던 그 누가 그를 흠모하지 않겠습니까, 빛나는 눈으로 앞날을 보며 스스로는 항상 자신의 종말을 향하고 있다면서도 그 말투는 순박하기만 했던, 그 어린 청년을 말입니다. 숲 밖으로 나가기 힘든 저희 도깨비들에게 있어서 앞날을 바라보는 눈은 얼마나 귀중한 보배이겠습니까. 그 청년이 지친 다리를 쉬어 가려 숲에 머물 때마다 저는 숲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도깨비는 잠시 말을 멈추고 이마에 흐른 땀을 짤막한 수건으로 닦아 냈다. 팔은 길었고 손가락은 여섯 개였지만 도깨비들은 손을 잘 쓰지 못했다. 살아가는 환경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런 도깨비들의 객실을 청소하고 관리해야 하는 내게는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손을 아무리 못 쓴다 해도, 방을 돼지우리처럼 쓸 필요는 없을 텐데.
'하지만 청년의 말을 알아듣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늘 제가 모르는 말들로만 이야기를 이어 나갔기 때문일까요, 아니라면 단순히 그 청년이 저보다 맑은 정신으로 살아갔기 때문일까요... 다시는 올 수 없다는 청년의 말조차 저는 바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또 다시 저 이야기인가, 대체 저 자들에겐 뭐가 흥미로운 이야기일까? 나는 잠시 이 이야기들이 서로 얼마나 비슷한지 생각했다. 인간이 인간의 언어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줄거리도 손꼽아 셀 정도라는데, 하긴 저 도깨비들이라고 해서 뭐가 다르겠는가. 믿기는 힘든 옛말이었지만 도깨비들을 볼 때마다 그 말이 맞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겁니까.'
'그 때 그 청년이 남기고 간 것이 이 반지였습니다.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그 숲을 다시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그는 말하며 제게 이 반지를 건네 주었고, 그의 소식은 다시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한들 그 어떻겠습니까, 그 기억은 여기에 선명히 남아 있거늘.'
도깨비는 입가를 웃는 듯 일그러뜨리면서 손을 내밀었다. 긴 팔 끝에 혹처럼 달린 손에 빛나는 반지가 끼워져 있어다. 별 생각 없이 나는 그 반지를 도깨비의 손가락에서 빼냈다. 도깨비는 고함을 질렀지만 무시하고 반지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다른 것은 지워지고 눌려서 확인할 수 없었지만, 보석에 새겨진 기호는 남아 있었다. 고향에 남겠다고 하며 나를 연구소로 보냈던 쌍둥이 형제의 것이었다.
'눈이 빛나는군요. 그 청년에 대한 그리움입니까, 그 청년이 떠나간 이유에 대한 자각입니까?'
도깨비를 다시 객실로 빨리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여러 가지입니다. 하지만 그 모두, 도깨비인 여러분이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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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uka Halfdead's Theme, 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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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유성 - Asuka Halfdead's Theme, 2007 하늘을 눈부시게 가르는 저 별은 타 버리지 않으면 잊혀지리니 어두운 밤을 흩어 지나가는 나, 하다못해 한순간의 섬광이라도 되리라
소용돌이치는 허공 속에서 꿈은 태어나 뜨지 않을 해를 기리는 백일몽으로 사라져 가네 이어질수록 기나긴 죽음의 숨결이 깊숙히 멈추고 만 세계를 휘감아 울린다 그렇게 잠든 땅에서 깨어난 영혼은 얻기만을 위해 몸부림치고 상실의 흔적이 노래하는 것은 메마른 욕망 기댈 곳을 찾아 비틀대는 몸으로 이제 누구를 잡아 일으킬 수 있으랴 흐려지는 눈 저편에는 걷잡지 못할 어둠만 남아 저 먼 하늘을 그리며 주저앉는다 밤에 덮여 묻힌 기억 저편엔 찬란한 열망이 아직까지 누군가의 발길을 기다리는데 무너질 것만 같은 고동은 어디에서 울려퍼지나
그렇게 이글대는 불길은 다시 식어 재에 덮이고 갈 곳 없는 망명객은 떠돌이가 되어 홀로 그리는 모든 선홍색 외침이 떠나간 곳으로 몇 번이고 쓰러지면서 계속 걷는다
어둠 속에 가늘게 깜박이지만 빛날지어다 불의 영혼, 가까스로 살아 가는 아침안개의 내일이여 빛 들지 않는 하늘을 가로질러 한순간만이라도 불타오르게 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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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 man i yulma nin enquantuv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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