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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의 한 주는 짧기 그지없었다. 일본 오오사카에는 이미 두 번 가 보았다는 것 때문에, 그리고 몽골이라는 낯선 땅에 발을 딛는다는 것은 굳이 “야만 세계”를 탐험한다는 식의 주민들에 대한 무지한 우월감이 없다고 해도 즐거운 일이기에, 그 한 주 동안 외로웠을지는 몰라도 결코 괴롭다고는 할 수 없었다. 평소 거친 일을 어느 정도 많이 해 보았다고 자부하던 터였기에 몽골에서의 일정을 처음 보았을 때 전혀 당황하지 않았던 나이지만, 정작 그 간단하고 거칠다고만 생각했던 일들을 해야 했을 때 다시 아파 오는 허리에 괴로워하며, 충분히 할 수 있을 듯했던 모든 일들이 계속될 때 얼마나 힘든지 깨닫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기관에서는 현재의 직업난이 힘들고 단순한 일을 피하려는 사람들의 경향성 때문이며 그런 “게으름” 때문에 외화가 새어 나가고 있다고 하지만, 3D 업종을 기피하는 빈곤층의 심정을 게으름으로 보는 것이 얼마나 부도덕하고 비인간적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비록 교훈이나 감동 같은 것을 믿지 않는 나이지만, “편하게” 살아 왔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너무나 큰 불편이 아니겠는가.
그런 힘든 일을 마침내 끝냈을 때, 내가 느낀 것은 그 어떤 보람이나 깨달음보다는 그 정도의 일이 주민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에 대한 걱정이었다. 나와 동료들이 만들었던 흙벽돌이 약하기 그지없다는 것은 그 벽돌을 부수어 진흙을 만들었던 내게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더구나 하루 소득 1달러 미만의 빈곤 상태라는 국가의 학생들을 보면서 그 학생들의 괴력에 가까운 체력과 시력에 경탄하고, 나무 판자를 밟고 올라가서 농구대를 설치하는 끈기에 놀라게 되었을 때, 나는 그들이 과연 한국인의 도움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 것인지, 또는 농업과 목축업을 주로 하기에 “어쨌든 먹고 살 수 있는 나라”에서 대체 소득이란, 그리고 경제 발전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몽골의 사막화 때문에 목축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사막화조차도 풀과 나무를 더 심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 불필요한 산업화를 도입해서 몽골이 지불하게 될 비용보다는 그런 정도의 불편쯤이야 감수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자급자족할 수 없는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작은 나라들에게는 산업화가 절실했다고 해도, 충분히 땅에서 나는 그 모든 것을 먹고 살아갈 수 있는 몽골과 같은 나라에 굳이 재생 불가능한 자원을 도입할 필요가 있을 것인가?
그런 믿음은 마지막 날, 몽골의 도시와 자연을 번갈아 보면서 더 커졌다. 도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교외라고 할 법한 작은 판자촌들은 너무나 흔하게 여겨졌다. 전날 분명히 깊이 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버스 안에서 잘 수 없어 나는 울란바토르의 교외를 별 수 없이 바라보아야 했다. 나름대로 도시답다고 여겼던 시가지에 비해 도시 인구의 대부분이 살고 있다는, 수도도 전기도 없어 초라하기 그지없는 판자촌과 천막촌을 바라보는 심정은 얼마간 착잡했다. 단순히 소련 때문에, 그리고 러시아나 미국 때문에, 초원을 유목하며 평화롭게 살던 몽골인들은 왜 공산주의라는, 그리고 개혁과 개방이라는 굴레에 매인 것일까, 그 두 나라가, 그리고 중국이 몽골에 얼마나 큰 역사적 피해를 주어 왔던 것일까. 한국인들은 일제 강점기 36년이 한국에 끼친 피해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괴로움을 겪어 온 몽골인들도 그러할까. 결국 산업화를 되돌리기는 적극적인 노력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법, 얼마 안 되는, 강이 흐르고 나무가 자라는 지역과 같은 곳마저 결국 산업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을 두려워하며 애덤 스미스와 밀과 케인즈, 혹은 헤겔이나 마르크스의 역사나 경제 이론이 얼마나 농경 사회에 “최적화된” 것인지 또 다시 생각하고 말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소감이나 깨달음을 봉사 활동에서 얻어 가고, 그런 깨달음을 한국에 돌아가서까지 “실천하기”를 바라는 것은 학교 당국의 과욕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개성이 강한 학생들이 많다고 학교 당국에서는 주장하지만, 이 학교의 학생들은 다른 어느 학교의 학생들보다도 더 심한 동질 집단이요, 거의 대부분 비슷한 환경의 가정에서 비슷한 교육을 받으며 살아 온 이들이 아니던가? 굳이 자세한 설문 조사 따위를 하지 않아도, 이 점은 학생들의 가정 환경 조사서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빈곤에 허덕이던 학생을, 학원 한 번 다녀 보지 않은 학생을, 혹은 농촌에서 자라난 학생을 찾아보라. 이 학교 학생들 중에서는, 최소한 06학년도 입학생 중에서는, 아무도 찾을 수 없다는 점은 불을 보듯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전혀 가난하지 않은 자신의 가정을 마치 매우 가난했던 듯 묘사한 이 학교의 어떤 졸업생을 비판하지만, 실제 이 학교에서 무산-중산 계급의 중간층에 해당하는 그의 가정은 정말로 가난했던지도 모른다. 그처럼 이 학교의 속성 중 하나인 소시민 혹은 준산 계층 출신이 대다수라는 점은 절대적인 특징이다. 그렇기에 결국 비슷한 계층에서 자라나 비슷한, 그것도 특화된 교육을 받으며, 마치 프랭크 허버트의 SF 소설을 연상시키는 “국가에 공헌해야만 할 인간 컴퓨터”로서 훈련받은 그들에게 국가와 학교는, 그리고 국민은, 어떤 개인적인 차이를 기대해야 할 것인가. 또는, 어떤 개인적인 차이를 기대하려고 하는 것인가. 생물의 속성에 있어 비록 체계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흔히 자유 의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무작위 변수(random factor)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설령 그것이 신경생물학적 실험이라고 하여도 그 변수는 변인의 지극히 일부분만을 차지한다는 것 정도는, 과학을 약간만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개성과 창의성을 길러 준다는 주장이 공허한 것인 만큼, 그들이 여태까지 살아 온 동질적인 삶의 방식만큼이나 이 학교의 구성도 동질적이기 그지없다. 이번 봉사 활동에서 그들이 어떤 것을 얻어 갔는지는 그들의 삶과 관계되는 것일진대, 어차피 어떤 의미로든 모두가 같은 일정을 따라 같은 삶을 살아 왔을 바에야 그들에게 개성과 특수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일까. 기실 이 점은 이 학교에서 좀 더 극명하게 드러날 뿐, 모든 현대인들에게 마찬가지일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합리성과 효율성을 중요시하게 만든 것은 자본주의의 원리이다. 하지만 그런 “돈 놓고 돈 먹기”라는 자본주의의 원리를 부정하는 봉사와 복지에서까지도 합리성과 효율성, 그리고 그 때문에 생겨난 또 다른 근대적인 관념인 “질서”가 강조된다. 사실 그것이 아니라면 봉사 활동을 하기 전에 굳이 체조 따위를 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그것도 규정된 형식의 체조를. 그리고 그것에 대해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았고, 불필요한 제도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 국민은 항상 거의 없다. 이처럼 이 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어떤 종류의 자유를 준다고 할지라도 결국 그 구성원들은 자신이 항상 배워 왔고 자신이 스스로 “택한” 그 질서 내에서 행동한다는 면에서, 현대 사회의 구성원들은 그 어디에 있든 간에 자신이 속한 사회 내부에서 방목되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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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과 더불어 한국의 여러 산들 중 가장 신비로운 산이라고 하는 지리산에 다녀온다는 공지 사항을 처음 상욱 선생님으로부터 들었을 때, 내가 느낀 것은 희열이었다. 평소에 자연의 신비로움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강한 애착을 갖고 있으며 지금도 그러하기에, 나는 망가지지 않은 대자연에 대해 경외심을 갖거나 최소한 이제 인간에 의해 산산이 부서져 가는 이 지구를 향한 엄숙한 조의를 표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따라서, 지리산 종주 자체에 대해서 불평에 차 있던 많은 동급생들과 달리 나는 어느 정도까지는 그러한 체험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편이었으며, 지난 귀가주가 끝난 뒤 학교로 돌아오기도 그다지 괴롭지 않았다. 과연 어떠한 사고도 없이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평소에 해발 고도 300미터 이내의 낮은 산을 자주 다녔으며 지난 백양산 등반도 그리 힘들지 않았던 터라 그다지 괴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지리산 종주를 시작하고, 선생님들을 대신해 학생들을 인솔할 인물들이 나타났을 때 내 예상은 잔혹할 정도로 처참하게 깨지고 말았다. 사전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은 탓인지 나는 어디까지나 AA 선생님들과 산악 안전 요원들이 인솔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상 밖으로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이 나타나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부터 파시즘이나 제국주의가 남긴 부끄러운 유산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했으며, 그런 점이 아직 대한민국에 남아 있다는 것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수치심을 느껴 오고 있었기에, 예비군복이기는 하지만 군복을 걸친 교관들이 등장했다는 것은 나로서는 충격적이고 괴로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내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식으로 선생님들이 말씀하시기는 했지만 내가 이 지리산 종주를 통해 얻은 교훈은 내 삶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것에 가까웠다. 불편한 점이 많기는 하지만, KSA에 재학 중인 여학생이라는 사실은 나를 여러 사회적 괴로움에 대해 둔감하게 만들었다. 여학생이기 때문에 남성들에게 해당되는 군대에 대한 공포증에서도 면제될 수 있으며, KSA에 재학 중이기 때문에 전국의 수많은 고등학생들이 걱정하는 내신이나 수능 문제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그만큼 내게 있어 그러한 제도적 모순은 한탄하고 분개해야 할 일일망정 그다지 절실하지는 못한 일이었다. 바꿔 말하자면, 대한민국 사회라는 큰 체제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고민할 수는 있는 문제라 해도, 내 문제로서 맞서 헤쳐 나갈 수는 없는 문제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종주를 통해 나는 그런 문제들을 내 문제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나아갈 방향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들이 말씀하시고, 강조하시던 것과는 다른 방향의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오로지 정해진 규율에 따르고 그 규율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스스로의 사고를 그에 맞추어 단순화시키는, 즉 공동체의 틀에 자신을 왜곡시키면서 맞추어 나가는 공동체 의식은 군국주의의 유물일 뿐이다. 그 공동체라는 존재가 공동???의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큰 괴로움을 주며, 그 구성원들 개개인의 권익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는 방향의 공동체 의식에 대해 이 종주는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흔히 공동체 의식이라는 말은 파시스트들에 의해 정해진 규율에 무조건 따르는 순종의 개념으로 정의된다. 파시스트라는 단어 자체의 어근이 되는 이탈리아 어 파쇼가 단결이라는 뜻을 갖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혼란스러웠던 20세기 초반의 시대 상황 속에서 태어난 파시즘에서 내세우는 공동체 의식은 원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공동체 의식과 너무나 판이한 성격을 갖는다. 서로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에서 처음 생겨났던 규칙은 점점 복잡해지고, 그러한 규칙이 복잡해질수록 그 규칙은 개개인을 속박하는 짐이 되고 만다. 이에 따라 본능을 따르는 수많은 이들은 그러한 규칙을 무시하게 되고, 결국 이러한 이들마저 통제하기 위해 불필요한 규칙까지 생겨나게 된다. 이번 종주에서 이러한 불필요한 규칙들은 여러 방향으로 나타났다. 수많은 학생들이 특히 불쾌해한 부분인 큰 목소리로 구령을 붙인다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지도, 무선 통신 장비를 사용하지도 못하는 규정은 기실 산에서든 산을 내려와서든 큰 소용이 없는 것들이었다. 큰 목소리로 구령을 붙이는 것은 나름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고 또한 호흡을 어렵게 해 등산에 오히려 지장이 된다는 것은 굳이 산을 올라 보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기본적인 지식만 있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는 일 역시, 균형을 잡을 도구가 없어진다는 면에서 안전에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두 손으로 돌을 들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을 볼 때, 돌을 드는 것보다 덜 위험하면 덜 위험했지 더 위험할 리는 없는 사항이었다. 무선 통신 장비 역시, 깊은 산 속에서는 어차피 사용할 수 없었으니 논외이지만 산을 내려와서 사용한다고 해서 안전에 문제가 생길 요소는 아니었다. 즉, 규정으로 이루어진 어떤 체계가 더욱 복잡해질수록 그 체계 속에서 불필요한 규정의 수는 증가한다. 법의 역사가 오래 된 나라의 경우 종종 효용성이 전혀 없는 법이나 현재에 통용하기에는 부적절한 법이 발견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그 법이나 규정이 통제하는 사회 집단의 변화에 맞게 법이나 규정이 적절히 변화하지 못하는 것도 불필요한 규정이 생기는 이유가 되지만, 이 종주를 통해 나는 이러한 불필요한 규정들이 생기는 이유는 다른 것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하나로 묶으려는, 마치 앨더스 헉슬리의 소설을 연상시키는 발상 때문이라는 의견을 갖게 되었다. 이 종주를 계획한 선생님들에게는 어떠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KSA 학생이라는 집단을 담당해 인솔한 교관들에게 있어서 KSA 06학번이라는 집단은 각기 판이한 144명으로 이루어진 무리가 아닌 하나의 덩어리였다고 볼 수 있다. 그 ‘덩어리’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당연히 동시에 움직여야 했으며, 그들의 목소리보다 144배 더 큰 함성을 질러야 했고, 뒤처지거나 다치는 사람 하나 없이 한꺼번에 무사해야 했다. 이 때문에 KSA 학생들은 설령 나와 같이 여기저기에 타박상과 찰과상을 입은 채 ‘겨우 쓰러지지 않을 정도의 호흡’만 가능한 상태에서 헐떡인다 할지라도 계속 교관의 말마따나 ‘빨리빨리’움직여야 했던 것이다. 또한, 그 때문에 가장 앞에 서 있던 환자 대열은 큰 목소리로 음역도 맞지 않는 군가를 따라 불러야 했고, 산이 산이 아닌 발목을 잡아당기는 무언가로 느껴지는데도 ‘좋다’를 외쳐야 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와 군사 독재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러한 전체주의적 관념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그 발원지가 되는 독일이나 일본과 같은 나라들보다도 대한민???에는 심각한 군국주의 및 파시즘의 유산이 깃들어 있다. 국기에 대한 경례가 너무나 당연한 의식으로 여겨지고 국가나 교가를 모르는 학생은 뭔가 모자라거나 이상한 학생으로 취급받는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불필요하고 형식적인 규정에서 벗어나려 하는 이들이 설 곳은 없다. 이미 그러한 파시즘을 충분히 경험했으며 그것이 불필요하다는 것도 충분히 경험하기는 했지만, 대한민국에 적을 둔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파시즘은 습관적인 타성과도 같아 그냥 두기에도 문제이지만 폐할 수도 없는 사안이다. 이 때문에, 더러는 현실 논리를 들어서, 더러는 효율성을 들어서, 이러한 파시즘적인 상황들은 종종 정당화되기까지 한다. 그러한 상황이 괴롭다는 것은 누구나 알 만하며, 사실 누구나 알고 있는 바이지만, 파시즘에 지나치게 오래 노출되어 있던 한국인들에게 파시즘은 의식의 일부를 점해 버리는 것이다. 이는 군대에 갔다 온 남성들의 성격이 거칠어지며 막무가내로 변한다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어떠한 사고 방식에 지나치게 오래 노출될 경우 인간은 그 사고 방식의 모순이나 맹점을 절대 인지하지 않으며 인지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 사고 방식은 그 인간을 이루는 요소가 되고 만다. 따라서, 어떠한 체제의 모순이 아무리 크다 해도 그 체제의 오랜 구성원들 자신은 체제를 스스로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많은 사회학자들이 주장했던 사회의 내재적 발전이 극히 느린 속도로 이루어지는 것도 이러한 이들 중 체제가 갖는 모순을 지각하는 예외가 극히 적은 숫자만 발견되기 때문이다. 같은 반 학생들과 함께 땅바닥에 모여 앉아 학생들이 교관에 대해 반복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느낀 것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은 교관을 욕하면서 순간순간 쌓인 분노를 풀 수는 있었지만, 결국 그 학생들에게 있어서 교관이라는 존재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고, 내가 맨 앞에서 절뚝거리며 걸어가서 시간을 끌어 주는 것 외에 그들이 불러 일으키는 문제를 해소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학생들의 건강 상태로나 무엇으로나 그토록 빠른 속도로 산을 오르는 것은 부당하고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는데도 그 점을 지적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고, 도대체 ‘왜’주머니에 손을 넣을 수 없으며 휴대 전화를 사용할 수 없는지 묻는 학생도 없었다. 물론 공포라는 심리가 작용하기도 했겠지만, 이는 일단 규칙이라면 의문 없이 받아들이는 파시즘적인 습성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미 길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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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런 파시즘은 모든 사람들에게 순종만을 강요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물론 파시즘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군국주의는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준법 정신보다 더 심한 정도의 순종을 요구하지만, 그만큼 그러한 억압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일반적인 규율보다 정도가 매우 심한 반감을 낳는다. 파시즘 체제에서 붕괴의 실마리가 보이기는 어려워도 일단 붕괴가 시작되면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라고 할 수 있다. 종종, 아무리 기존의 규율이 억압적이며 사람들의 정신을 깊게 침식시켰다고 해도 하는 일 없이 자유를 제한할 뿐인 불필요한 규칙에 대해서 대중이 갖는 반감은 파시스트들이 예상하고 있는 것보다 매우 크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반감 때문에 아무도 쓰러지지 않고 종주를 완료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육체적인 고통이 심해지면 정신과 의식이 단순해진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종주가 시작되기 전에 가졌던 온갖 복잡한 상념들은 육체에 가해지는 무리가 심해질수록 마치 다른 사람의 것이라도 되는 듯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결국 종주가 끝나 갈 셋째 날 무렵에 내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 것은 그 다음 몇 걸음이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또는 시간을 끌 수 있는지 끌 수 없는지와 같은 지극히 단순한 요소들이었다. 오르막길을 증오하면서, 오르막길을 오르게 하는 내 앞과 내 뒤의 행렬을 증오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더 이상 산으로 보이지 않고 발목을 잡아당기는 요소로 보일 뿐이었던, 그 가증스???운 오르막길을 만들어 놓은 산 자체를 증오하면서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걸어갔다. 그 때는 괴롭다 못해 슬프기까지 했지만, 오히려 이 점 때문에 산을 충분히 느끼면서 가는 이들보다 빠르게 걸어가면서도 어떤 사고 없이 내가 무사히 종주를 종료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대부분의 윤리를 강조하는 철학자들은 무시하는 사실이지만, 인간의 행동을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 중 하나는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증오이다. 가장 강력한 동기를 갖는 정치적 행위 중 하나인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바로 증오이며,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러한 증오는 수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수많은 역사적인 예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만큼, 인간의 의식에 있어서 증오는 큰 부분을 차지하며, 평소에는 불가능했던 수많은 일들을 전쟁 중에 인간이 해내는 것도, 물론 파시즘적인 규율이 지배하는 전쟁의 현실도 작용하지만, 그러한 증오가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비인간적인 상황에서 인간은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겪지만, 이 역시 그러한 증오가 마취제로 작용함으로써 해소된다. 결국, 만약 파시즘적인 규율을 통해 학생들에게 강한 반감과 증오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의도된 바라면, 그 계획은 상당히 효과적이었고 학생들이 무사히 종주를 종료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파시즘을 통해서 학교는, 또는 위탁받은 인솔자들은, 학생들이 전혀 다치지 않고 예정된 속도대로 행렬을 따라가게 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 파시즘이 불러일으킨 증오심을 통해서 학생들은 그다지 지치지 않고 그 증오를 마취제삼아 심리적인 영향 없이 종주를 마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러한 파시즘도 어느 정도까지는 학생들에 대한 마취제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취제는 결코 치료제가 될 수 없듯이, 이러한 인솔 방법을 채택함으로써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 대자연의 신비를 경험하고 그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기는커녕, 학생들은 파시즘적인 체제와 그것을 강요하는 학교에 대한 반감을 키웠을 뿐이다. 이러한 문제가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중등 교육 기관이라 불리는 이 곳, KSA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특수 목적 고등학교가 계속 생겨나는 현실을 생각할 때 멀리 보아서는 학교 경쟁력에도 큰 장애가 된다. 학생들을 잠시 동안 마취시켜서 종주는 종료할 수 있었지만, 그 종주로 인해 학생들은 심각한 불쾌감과 허탈감, 그리고 배신감을 맛보아야만 했다. 물론 내가 대화한 몇몇 학생들이 표본이 되기는 부족하지만, 적어도 내가 대화한 학생들은 대부분 종주가 이러한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에 대해 심각한 실망감을 표했다. 예상과 달리 파시즘에 대한 증오와 반감이 모든 감정을 지배하고 육체적인 괴로움으로 인해 의식이 단순화되어 괴로움과 증오심 이외에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하면서 다녀오기는 했지만, 이 지리산 종주가 내게 남긴 긍정적인 효과라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사회의 문제를 직접 느껴 보고 그것을 해소할 방안을 고민할 수 있었다는 공동체 의식 함양일 것이다. 진정한 공동체 의식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고 그를 위해 노력하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군국주의의 잔재와 효율성의 병폐를 직접 두 눈, 그리고 두 팔과 두 다리로 확인하고 나서 나는 이제 병역 기피자들의 심정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군사 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에 힘쓰던 사람들의 심정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학생들의 기억 속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는 했지만, 이러한 점에서 지리산 종주는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사회에 공헌하려는 내 의지를 더욱 굳건하게 해 준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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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의 압박이 상당하겠으나, 어쩔 수 없다.
원작자:이예림, 퍼 온 인간:떠도는 불의 넋.
해설은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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